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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07. 2023

한 해 한 해의 생일상들

수면부족...

와아 일출이다 

 우리 아기도 이제 두 발로 서서 첫 일출을 보고- 와아 와-

 파도도 담아보고- 와아-

 와아- 새해다 와아- 우리 존재 화이팅!

...생일 이튿날, 


 그리고 일출을 보고 온 3일 뒤. 


 다시 말하여 생일상을 차리고 난 뒤 오후.


 페이스북이 과거 사진을 꺼내어, 두번의 생일상 사진을 보여준다. 저게 아마 세번째였던가, 그리고 하나는 작년, 아이를 안고 만든 생일상 사진도 있다. 아침을 왁자지껄 정신 없이 보내고 난 뒤 페이스북에서 띄워준 사진들을 보니, 저 일출이 원망스러워지네. 올해 생일상은 조금 반성이 된다. 

 미역은 선물로 받은 게 두개가 있다. 둘 다 좋은 미역이라고 하는데 흑산도는 최근에 엄마가 여행을 다녀오셔서 안기신 것. 나는 고민을 좀 해보고 두 미역 모두 쓰기로 했다. 왼편의 검은 미역도 좋은 미역인데, 아무래도 시판 미역들에 비해선 쓴맛이 있는 편. 끓인 물에 조각조각 낸 미역을 넣어 불리면서 이내 들기름도 넣는다. 드글드글드글, 미역의 세포들을 최대한 터트리면서. 


 요리를 하고 있는 시간은 저녁을 대강 먹고 난 뒤. 지금부터 한 서너시간을 끓여야 마침내 미역국이 완성이다. 평소에라면 들기름에 미역을 아주 오래 볶진 않는데, 오늘은 생일상인. 가장 맛있는 상태의 미역국이 되도록 오래 오래 볶는다. 

 한 15분 가량 충분히 볶아준 미역들이라 이제 소고기와 함께 물을 넣으니 이미 뽀얗게 국물이 우러나 있다. 뚜껑을 닫고 당분간 작별이다. 고기는 평소엔 양지를 쓰다가 오늘 사태를 사서 넣어봤다. 첫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미역국은 일단 해결. 

 그리고 좀 특이한 갈빗대를 샀는데, 마트에 가서 보니 일반 찜갈비는 2만원에 500그램 정도 가격. 근데 장모님도 와 계신데 값도 조금 나가고, 아무리 한끼여도 그래도 갈비인데 양은 넉넉해야겠어서 고민을 하다가 엉뚱한 놈을 샀다. 목갈비? 라고 하는데 실상은 돼지 감자뼈와 비슷한, 고기를 성형해내가고 남은 사실상의 잡뼈를 갈빗대라고 판다. 


 사실 이 갈빗대를 살 일이 아니었다. 원래 가는 정육점이 있는데 불고깃거리를 한 근에 9900원에 판다.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종종 사다가 만드는데 매일 열지 않고 수금토일 딱 4일만 연다. 그런데 생일상을 차리는 오늘은 화요일인지라, 그 정육점엔 가질 못하고, 학교 앞 마트에서 장을 보러 왔는데 또 불고깃거리를 제대로 된 놈을 팔질 않네. 


 그래서 에라이 갈비찜이나 하자, 하고 선회를 했는데. 생일상에 미국산 쇠고기를 올리긴 싫고, 그렇다고 한우 갈비는 아무리 그래도 값이 문제, 불고깃거리는 9,900원에 한근인데 오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건 망설여지고...그래서 결국, 이 잡뼈 갈비를 샀다. 한번 신기한 건 하고 보는 내 성질머리도 한 몫했다. 

 아무리 갈비뼈가 좀 수상한 놈이어도, 요리는 제대로 해야지. 핏물 빼고, 넉넉하게 야채 넣고, 마늘과 생강도 넉넉히 넣고, 진간장에 집간장 합쳐서 풍미까기 챙기며, 미역국과 같은 시간 졸였다. 찌다가 한번 보니 물이 적은 것 같아 한번 더 붓고 팔팔. 


 아무리 잡뼈여도 쇠고기는 쇠고기에 갈비는 갈비인지라 맛은 있다. 다섯시간 가까이 넉넉히 찌고 졸이니 마침내 뼈에서 고기가 부드럽게 발린다. 이제 끝!


 그러나 여기서 이제, 다음날 문제가 터졌는데...

 마트에서 함께 사온 섬초. 그리고 내가 이것을 마주한 시간, 아침 7시 40분. 


 망했다. 완전히 망했다. 망가진 바이오리듬에, 알람을 여섯시에 맞췄는데, 깨어나질 못했다. 


 깨어나질 못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나는 눈을 뜬 순간 부리나케 일어나 나물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일출이 문제야. 


 아니, 우리의 복잡했던 주말이 문제야.

 12월 31일이 마지막 날, 우리는 미루고 미뤄온 대청소를 시작했다. 바깥양반은 열두시까지 꿀잠을 자고 일어나 아기 놀이방을 꾸미기 위한 대청소에 돌입, 나는 오전 7시반에 이미 일어나, 아이를 챙기랴 미리 쓰레기를 버려두고 분리수거를 해두는 등 나름 분주하게 보냈다. 


 이 시점에 이미 나는 굉장히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는데, 그것은 목요일에 학위 논문의 수정 계획을 교수님께 송부하기 위해 새벽 네시에 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 일과라는 게 뻔하기 때문에 목요일과 토요일 사이 금요일, 딱히 내가 쉴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러니가 토요일에 이미 굉장히 피곤한 상태에서, 대청소를 쉬는 시간 포함하여 열 두시간 가까이 진행하고, 밤 열시가 넘겨 아주 잠깐 쉬겠다고 누운 것. 


 그리고 자정에 일어나, 우리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두시에 양양으로 출발했다. 차에서 서너번 가량 새우잠을 잔 뒤, 다시 파주로 달려 1월 1일 가족모임을 실시하고, 결론적으로 나는 일요일에 밤 1시에 되어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러니, 바깥양반의 생일상을 차리던 화요일에는 쌓일 대로 쌓인 피로에 몸을 가누기 힘이 들었고, 아침에도, 여섯시 알람을 듣지 못한 것. 

 그 덕분에 완전히 늦어버렸다. 일곱시 40분이라니! 못해도 8시 반엔 집에서 출발해서 출근해야 하는데! 


 쌀을 번개같이 씻어서 솥밥에 앉히고, 나물 두개를 빛의 속도로 만들고, 그리고 꼬치전을 만든다. 그리고...악 망했다. 동태전이, 망했다. 시간이 없어서 한꺼번에 최대한의 많은 양의 동태전을 후라이팬에 올렸는데, 밀가루를 안해서 그런가 그만 계란옷이 다 풀어져버렸다. 


 역시 레시피를 어긴 죄의 후과는 크다. 그래도 동태전은 스크램블처럼 되어도 나름 먹을만은 하고,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꼬치전은 잘됐으니 다행. 삼색나물에 삼색전은 아닌꼬치전에, 갈비에, 미역국. 급하고 급하게 생일상 완료. 

 갈비는 부드럽고 달다. 엄마가 해준 숙주나물을 포함, 세가지 나물, 특히 섬초가 매우 달고 맛있다. 나물은 정말 잘 되었다. 갈비찜은 값에 비하여 만족스럽다. 시간이 나는대로 불고깃거리를 사고 와서 나의 양심의 가책을 메우기만 한다면. 


 다만, 이렇게 상을 차리고 나서, 페이스북이 강제로 상기시켜준 지난날들의 생일상을 다시 보니, 괜스레 바깥양반에게 미안해진다. 아이를 낳고 매일같이 힘들고 바쁜 하루에, 생일상이라는 위로가 얼마나 큰데 말이다. 물론 이쯤만 되어도 바깥양반은 즐겁게 드셨지만, 그리고 논문과 일출과 대청소라는 겹경사가 겹치고 겹친, 탓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생일상에 후회는 남아선 안되지. 한 해 한 해의 생일상에 어느것도, 후회와 아쉬움보다는 더 큰 기쁨과 노력이 있어야 하니, 내년엔, 그래 우리. 욕심도 줄이고, 대청소는 좀 미리 하고, 일출은, 보고 오는 건 좋은데 일출을 보고 와서는 잠은 푹 한 낮잠만 세시간은 자 주고, 밤에도 일찍은 자고. 그래야 건강하게 나이 먹을 성 싶다.


 생일상을 차릴 사람도, 생일상을 받아먹을 사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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