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는 오락영화가 설명하는 예술영화로
<에에올>은 멀티버스를 효과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침 영화팬들에게 멀티버스를 주제로 한 영화로 높은 기대를 받은 <닥터스트레인지:광기의 멀티버스>가 애매한 평가를 받은 뒤에 개봉한 터라, 이 영화가 멀티버스에 대해 내세운 참신한 설정과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활용한 연출과 유머는 관객들에게 무척 반가운 것이었다.
<에에올> 이 멀티버스에 대하여 특히나 성공한 점은 "설명"을 늦추고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멀티버스를 먼저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러닝타임 35분이 지나도록 관객들은 멀티버스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한다. 제한된 묘사와 제한된 정보만을 수용하며 어렵사리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들을 해석해야 한다. 이 과정은 그렇다고 불친절하기보단, <단서 제공-해석-새로운 단서 제공-다시 해석>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멀티버스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소재를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납득시키는 방식으로, 그것도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며 이루어진다.
이는 SF 오락 영화로서 굉장히 큰 미덕이다. 그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의 도입부에서 비오는 어두운 도시의 밤하늘을 유영하는 주인공의 비행체, 그 뒤에 미소짓는 일본인 여성 광고모델의 모습으로 단번에 시각적 스펙터클과 함께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이해히킨 것처럼, <에에올>에서도 먼저 갑작스러운 남편의 변신으로 "이변"을 인식시킨 다음, "이변의 정체"를 해석해주고, 다시 "이변의 의미"를 인식시킨다. 딱딱한 문자를 해석할 필요 없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차례 차례 이해만 하면 되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한시간 가까운 긴장의 상승곡선에 몰입하기 무척이나 쉽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 긴장이 해소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다소 의문스럽다. 아니 의문스럽다기보단 지루하다. 이제는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설명하는데 치중하며 영화가 100분간 쌓아올린 미덕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에올>이 작품에 배치한 갈등은 세가지로, 주인공 에블린 본인의 인생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갈등이 첫번째, 남편과의 관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두번째, 딸과의 관계에서 존중과 배려를 넘어선 접근과 배려가 세번째다. 사실, 이 하나하나가 매우 중차대한 질문이고 과제들이다. 영화에서 풀려고 한다면 이것들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섬세한 접근들이 이루어져야 결말에서 완전히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장치를 통해 이 세가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러닝타임 대부분이 첫번째 갈등, 에블린의 인생의 선택과 갈등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두번째와 세번째 갈등은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극 최후반부에 이르면 남편과의 갈등, 딸과의 갈등의 해결이 첫번째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써 제안되며, 통속적이지만 자신이 선택해 걸어온 길, 즉 남편과의 사랑이 옳은 것이며 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상처입더라도 서로에게 더욱 다가서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가치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감독 두 사람의 논의와 결론을 수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결말부에 이러한 결론을 관객에게 설득시키기에는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기에 영화는 보여주기를 포기하고 이제 설명하기에 돌입한다.
이 설명하기로의 전환은 멀티버스를 주제로 한, 알기 쉬운 SF액션영화라는 영화의 문법을 조금 난해한 예술영화의 문법으로 대체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액션은 결말부에서 큰 의미없이 흘러가고 이제 멀티버스를 활용한 여러 장면을 교차편집해 보여주는데, 여기에 남편의 문제도 따로 풀어야 하지, 딸과의 문제도 따로 풀어야 하지, 내 인생의 문제도 풀어야 하지. 하니, 예술영화로서도 함량미달이 생긴다. 액션영화로서의 미덕을 포기하고, 예술영화로서 욕심을 냈으나 그것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니 영화의 정체성을 무엇이라 말하기 쉽지 않다.
감독들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라서 파트를 셋으로 나누어, 대강 80분은 액션에, 남은 30분은 드라마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은 영화가 그렇게 파트를 나누는 것이, 영화의 장르가 오락영화에서 예술영화로 바뀌는 것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영화의 서사 자체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라는 일직선으로 특별히 파트 구성에 따라서 변화하지도 않는다. 영화의 파트는 정말로 영화의 장르 전환에 따라 결정된듯하고, 그 와중에도 감독들은 과욕으로 후반부까지 자신들의 메세지를 꽉꽉 눌러담는다.
후반부에 러닝타임의 부족으로 보여주기는 제대로 되지 않고 설명하기식으로 평면적으로 영화가 흐르는 것을 고려하면 이 과욕이 퍽 아쉽다. 쓸모없는 장면이 너무 많은데 대표적으로 다른 우주의 요리사와의 장면은 서사에 아무 관계가 없어서 모두 덜어내도 상관이 없다. 라쿤 유머에 너무 과몰입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 또 초반부 액션의 템포가 불필요하게 늘어지고 남편의 멀티버스 이동이 지나치게 동어반복된다. 결정적으로, 화장실유머는 하나도 안웃긴다. 이 불필요한 장면들을 덜어내고 주제 전달과 서사에 신경을 썼다면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왔을듯하다.
가족은 정체성의 변화와 자기희생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가족의 화해라는 테마와 인생의 선택이라는 테마를 한데 모으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가족을 택하자면 필연적으로 자기 희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내 운명과 정체성, 더 나은 가능성을 살리고 가족도 살리는 길이란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가족도 포기 못해 나도 포기못한다며 과욕을 부리면서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예술영화 방식이니, 평론가는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일반관객의 관점에선, 글쎄?
또한 원안의 주인공은 남자로, 성룡을 배우로 염두한 각본이었다는데 원안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여성 중심의 서사임에도 주인공이 후회하는 인생의 선택이 남자와의 결혼과 아버지와의 절연이라는 남성 의존적 서사라는 점도 문제를 남긴다. 물론 감독들이 페미니즘을 의식했다는 근거는 없기에 부당한 비판일 수 있으나, 영화가 비추고 있는 것이 여성의 삶이되 그것이 남성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그 결론은 그런 종속적 삶을 수용하는 것이라면, 굉장히 정치적으로 불온한 메세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SF영화로선 오랜만에 신선한 웰메이드 영화라는 평이 중론이지만 서사와 유머를 위해 설정이 편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쉬운 부분. 이 점은 영화가 "보여주기" 중심의 연출을 택하고 있어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딸과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우주의 과거 시점으로 가버리면 즉시 해결된다. 영화에서 이미 같은 우주의 다른 시간대를 비추고 있기 때문에 설정상 불가능한 부분도 아닌데, 관객이 품는 그런 의문을 영화는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과거를 바꾸는 건 타임 패러독스 때문에 안돼."라는 대사 하나면 해결되었을 일인데 유감인 부분.
영화는 기본적으로 남의 돈과 남의 얼굴을 빌려서 하는 대중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정도 자본이 투자되고 자기 커리어가 걸린 배우들이 섭외되었으면 예술성 역시 작품의 대중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작품들을 만들어온 젊은 감독들의 작품세계에서 아직 그런 고려까지는 다다르지 못하는듯해서 아쉽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것이 작품의 주제를 삐걱대게 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