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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27. 2023

좋은 곳도 나쁜 곳도, 그대 있음에.

제주도 2일차

오늘 첫 식사는 18,000원 갈치정식이었다. 현지인 맛집은 아니고 관광객을 타겟팅한, 새로 지은 건물에 깔끔한 자기그릇들, 그리고 목재 트레이에 담겨나오는 한상. 정식이 아니라 한정식스럽다. 친절했고 무난했다. 다만 갈치는 적었다. 진짜 "밥집"에 가까운 백리향의 갈치정식을 기준으로 잡을 때, 1인분에 중소 사이즈 갈치 네 토막이 나오는 백리향과, 오늘 먹은 큰 갈치 한토막을 비교해본다면 아무래도 가성비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겠지. 


 그정도. 그정도 말고는 그 다음 또 그 다음으로 찾은 카페들은 모두 괜찮았다. 겨울이라 인적이 드문 협재해변을 거닐며, 예전에 가본 카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다가 찾은 조랑게라는 카페에서는 아이 사진을 비양도 배경으로 원없이 찍었다. 마침 운 좋게도 짤막하게 햇살이 나와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해살스러운 아이의 웃음을 프레임에 담는다. 그 다음은 동백나무가 십여그루 심어진 카페.


 사람들에게 카페가 알려지고 찾아와지는 것이 저마다의 경로가 있는 것인가 싶다. 동백나무 카페는 아무리 보아도 인스타그래머들의 구미에 맞는 곳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손님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바로 전에 간 비양도 뷰의 조랑게에서는 우리 말고는 한시간 동안이나 손님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카페마다의 생로병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할 터이지만, 굉장히 핫플레이스처럼 보였던 협재식물원 카페도 언제 숙박업소로 바뀌더니만 영업을 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여름에 가면 영업하는 걸 볼 수 있을까. 


 저마다의 생존방식, 저마다의 카페의 생애라고 한다면, 세번째 카페는 정말 카페다운 그런 곳이었다. 블렌딩 원두와 싱글오리진을 다양히 제공하며 아메리카노 라인도 라떼 라인을 서너가지로 구비한 제레미. 사람이 한 열명 들어가면 꽉 차는 이 곳에서는 다른 카페들처럼 셀카를 찍기에 바쁜, 수다를 떠느라 분주힌 그런 분위기라곤 없었다. 여행자 느낌이 물씬 나는 카페 안에서 주인장 두분은 커피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커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 카페에서는 우리 부부와 아기가 유일한, 어울리지 않는 방문자 쪽에 가깝다고 할까. 두 바리스타 중 한분께서 자기 아이가 생각난다며 우리 아이와 한참 놀아주셨다. 그리고 바에 앉아서 바리스타님과 한동안 이야길르 나눴다. 내 로스팅 이야기와 커피 라인에 대한 이야기. 으음. 아무래도 내가 가져온 콩은 한달을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여기서 한번 콩을 구해서 먹어도 좋을듯 싶다. 


 그러나, 또, 저녁은 완전히 꽝이었다.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TV 맛집프로에서 소개된 집인데, 지도에서도 수백명의 평점과 리뷰가 있어서 만족할만한 곳인줄 알아서 왔더니 꽝. 완전히 꽝. 우선 고기국수는 돼지뼈를 썼는데 꼬리꼬리하고 깊은 맛은 없다. 게다가 18,000원짜리 흑돼지 육전은 달랑 주장 나오는데 이게 원가는 1500원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육전이 맛없다고 생각하는데 게다가 왜 때문인지 흑돼지의 비선호 부위인 뒷다리를 처분하려고 만든 이런 메뉴가, 연예인들의 입을 빌려 환상적인 맛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게 하여 사람들을 현혹하는지 모를 일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엔 바깥양반이 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도 이해하고, 속아서 오게 된 사정도 이해를 하니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잠자코 있다가 식당을 나와서야 "당시 덕분에 오늘 눈탱이 한번 맞았네."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다 우리 삶의 맥락 위에 자리하는 오늘의 해프닝이라, 대단한 사건은 아닌것이지만, 이런 엉터리 가짜 맛집에 속아서 끌려오는 것도, 환상적인 카페에 함께 들르는 것도, 이도 저도 그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나 하며, 나는- 으음...바깥양반은 먹지 않는 제주도 순대를 언제 먹을까. 계획을 혼자서 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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