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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29. 2023

우리 여기 꼭 다시 오자, 해남 문가든

 "하..."


 겨우 여기까지 왔다. 문가든의 정원을 보는 순간 어깨가 턱 내려앉는 허탈함과 피로감이 함께 몰려들었다. 새벽 다섯시에 번개같이 일어나 여섯시에 칼같이 출발했다. 그러나 평일 아침의 수도권의 도로는 이내 밀리기 시작해, 경기도를 벗어나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나니 평온한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권에 들어오니 이제는 쌓인 눈, 내리는 눈이 문제였다. 배와 비행기를 멈추게 했던 눈은 길에 그대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발을 잡아 끌었다. 여섯시간 하고도 10분 가량이 찍혔던 네비는 배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자리했고, 휴게소에도 들르기 힘든 조건을 마련했다. 


 해남까지 와 점심을 먹고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아이를 먹이는 것이 우선, 우리의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니 이것도 일이다. 해남에서 완도까지는 지척이라 시간이 아주 잠깐은 나, 우리는 조금이나마 쉬고 가자고 하였고 그래서 다시 미련하게도 차로 15분, 남에서 북으로 거슬로 올라가 이곳을 찾았다. 


 시골 어디에나 최신식으로 세워진 카페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땅끝마을 해남도 그렇다. 해남 읍내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니, 아주 멋진 카페가. 


 그러나, 차에서 내려 그제서야 여섯시간 이상 이어진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의 몸의 충격은 무어라 말하기 어려웠다. 

 멋진, 그러나 드물진 않은 큰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니 멋진, 그러나 역시나 드물진 않은 흰색의 벽, 흰색 커튼, 미색 전구들이 우릴 반긴다. 여기까진,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 그러나 여길 찾은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역 협력사업으로 꽤나 큰 정원을 끼고 있는 카페인데다가, 저수지를 면하고 있어 호수뷰까지 갖췄다. 그래서 1년 내내 다양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택한 곳이다. 짐을 두고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온다. 눈 때문인지 손님은 아직 우리 밖에 없다. 

 정원이 꽤 크다. 몇백평은 된다나. 가로수길도 있고 온실도 있으며 갖가지 조형물이 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은 호수뷰를 활용해서 보트를 타는 포토존을 만들어둔 것이다. 지금은 수량이 줄어서 저수지 물이 1/3밖에는 안차있는 것 같지만, 사장님께 물으니 원래는 늘 수량이 풍부한 호수라고 한다. 올해 호남지역의 가뭄이 워낙 심해서 그렇다고. 하긴 심하긴 했더란다. 


 산에 감싸인 자리라 바람은 심하지 않았다. 다만 워낙에 한파라 밖에 오래 있긴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모로 아쉬운 방문이었다. 하늘은 티 없이 맑지, 들과 산의 설경은 찬연하지, 거기에 여섯시간의 피로를 풀고자 찾은 곳이라 한갓지게 좀 쉬다 갔으면 좋으련만, 30분 안에는 다시 엉덩이를 떼기로 하고 들른 곳이다. 그래서 커피를 주문하고도 밖에 나와서 구경을 하느라 몇 모금 마시지도 못했다. 

 아이는 점점이 바닥에 내려줄 때마다 그래도 눈에 적응을 하며 이리 저리 걸으려 한다. 요즘에 눈을 먹으려 하진 않아 다행이다. 아이에게도 아쉬운 방문이 되었다. 이왕이면 여기 저기 뛰어놀게 하며 자동차 안에 갇혀있던 고단함을 좀 풀어주고 싶은데 밖은 춥고 안은 아이 손에 걸리는 게 많다. 너무 짧은 방문, 너무 강한 추위, 너무 많은 눈들, 눈처럼, 겹겹이 아쉬움은 쌓인다. 


 아이를 놀리면서 내내 서 있으려니 카운터 자리의 환함이 눈에 들어온다. 정면의 밖뜰의 하얀 설경에 비하여 후원이자 입구 방향에는 또 울긋불긋 환하고 밝은 장면이다. 밖뜰이 주는 고요함도, 안뜰이 주는 찬란함도 모두 좋다. 차가운 설경을 보다가 따스한 붉은 잎새들을 보니 마치, 겨울 길 긴 거리 끝에 발견한 산수유 열매를 본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우리 여기, 꼭 같이 다시 오자. 봄에는 더 좋겠네."

"응. 언제 오나 근데 해남이라 멀잖아."

"백종원이 갔던 소고기 집도 가야하고...5월이면 좋을 텐데."


 나는 5월의 남도기행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가슴 한 켠에 그게 또 꿈이다. 5월의 지리산, 5월의 느슨함을 마음껏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고 행복할까. 우리가 낼 수 있는 휴가는 여름과 겨울이라, 그리고 남도는 멀어서 도통 오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 이런 아름다운 카페에, 정원에까지 와서야. 꼭, 봄에 남도를 걷겠다는 다짐은 커진다. 

 해남에까지 와 이런 콕 박혀있는 카페에 올 방문자는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는 제주도로 가는 완도항의 길목이라 해남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경 다섯시간이나 달려야 하는 길임에도. 그것도, 아이와 함께. 그러나 늘 길은 멀고 이 곳을 못내 떠나야 하는 아쉬움은 역시 크다.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길. 호남에서도 그것도 가장 남쪽의 이곳엔 우리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았다.


 나는 에어비엔비로 아내와, 아이와 갈만한 숙소부터 찾아봤다. 여름 겨울 두번의 휴가에 여윳돈을 모두 때려넣고 있는 판이라, 기본 육아비용에 융자금 등등 하루 하루 '빡센' 나날이지만은, 그래도, 이곳은 꼭 다시 오고 싶다. 봄기운이 들에서 솟아오르는 그 계절에. 그때쯤 더 단단해져 있을 아이의 두 다리로 함께 걷길 그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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