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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27. 2023

여행자들이 머물다 가는 곳, 카페 제레미

제주도 애월

 제주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을 셋 정도 고른다면 중문과 성산 다음으로 애월을 꼽지 않을까. 문어라면집과 카페거리가 형성된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 그 분주함을 지나치면 작디 작은 카페 하나가 마치 자기 모습을 감추려는듯 전봇대와 가로수 너머로 자리잡고 있다. 모르면 영양 모를 것처럼 생긴 이곳, 제레미에는 “닫힌 것처럼 보이지만 열려있습니다.”라는 글씨가 문 앞에 붙어 먼저 여행자를 반긴다.

 바 자리에 한 다섯명, 테이블 자리에 또 한 다섯. 주인장 바리스타는 두분이니 사람이 한 다스만 들어가도 꽉차는 작은 카페다. 우리는 바 끄트머리에 마침 두 자리가 나서 입장과 동시에 안내를 받았다. 겨울 비수기이기도 하고 이곳이 그 맛에 비해서는 너무나 조용히 숨어있는 카페라, 웨이팅 없이 앉아있을 수 있었달까. 두 바리스타는 커피 주문을 받고 내리면서 동시에 방문하는 손님들과 두루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낯설지만 친근한 곳에서 여행자는 주인장들이 커피를 내리는 표정까지 모두 바라볼 수 있었다.

 작은 가게에 비해 커피는 구성이 알차다. 블렌딩 원두를 세가지 버전으로, 싱글오리진 두 종류를 매주 구성을 달리 낸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땐 볼리비아와 에티오피아 워시드 원두 두 종이 있어서 각기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으로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바리에이션으로 아메리카노와 라떼만을 각각 세가지, 네가지 배합으로 제공한다.


 예가체프는 정향을 좀 누를까 싶어서 더블샷에 온수를 소량 배합하는 롱블랙으로 시켰다. 그런데, 꽤나 괜찮다. 이곳 커피들이 매우 뜨겁게 서빙되는 편인데, 조금 식으면서 점점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마냥 산미를 진하게 뿜어내는 롱블랙은 베리 류의 상큼함이 바디감을 꽉 잡고 있었다. 절반 가량 마신 뒤에 제공된 설탕을 모두 털어넣었다. 이 커피는 리프레시 그 자체다. 마침 이때쯤 적당히 온도가 내려가 딱 마시기 좋다. 산뜻한 묵직함에 계속 입이 간다.

 볼리비아 원두는 아메리카노로 시켰다. 조금 더 구수하고 산미는 덜하다. 꿀 향이 드러나며 목넘김이 부드럽다. 괜찮다. 라떼로 먹어봤어도 좋을 것 같다.


 이쯤에서 내 왼팔에 낑겨있던 아기는 지루하고 졸리다며 칭얼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를 달래랴 혼자서 두 잔의 커피를 마시랴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니 아이를 넘기려 해도, 아이가 이내 아빠를 찾으며 내게 안긴다.


 감사히도 바리스타님께서 자기도 아이가 있다며 우리 아이를 안아서 한참을 놀아주셨다. 그 바람에, 그제서야 나도 다리를 펴고 커피 매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싱글오리진에 워시드 두 종, 내추럴 두 종이 있어, 다음 방문을 예비케 한다.

 바리스타님에게 싱글 오리진 중 어느쪽이 잘 나가냐 물었더니 모두 비슷하다고 답하신다. 하긴, 그래도 주민들이 고정적으로 오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드나드니 특별하게 싱글오리진 선호의 편차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그 탓에 주 단위로 딱딱 싱글오리진의 교체가 이루어지진 않는다 한다. 어느 정도 앞전의 원두가 소모되는 것을 보고 다음 커피를 준비한다고 한다.


 이쯤에서 나는 내 로스팅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나갔다. 아무래도 집에서 마구잡이로 커피콩 볶이라, 워시드보다는 내추럴이 편하기도 하고, 마침 내 솜씨로도 맛깔나게 추출되는 생두를 마침내 찾아내 즐겁게 커피를 볶고 있다는 얘기. 바리스타님은 생두의 밀도나 로스팅 기구의 열순환 등 디테일한 피드백을 주었다.


 제레미만의 특이한 분위기가 있다. 여기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고 카메라의 셔터음이 없다.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인스타그래머가 없고 비니에 패딩을 걸친 여행자들이 드나든다. 카운터 앞에서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분주한 분위기를 보다보면, 아 이곳은 관광객들의 카페가 아니라 여행자들의 카페라는 기분.


 아빠의 책에 낙서를 하던 말괄량이는 한 여행자가 포대기에 담아온 강아지와 한참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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