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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30. 2023

이립, 제주도에 뜻을 세우다.

귤밭뷰에 레터링 서비스

"이립? 이름이 특이하네."

"응. 무슨 뜻인데?"

"이립 지우학 지천명...나이 별로 뜻 세우고 공부 배우고 하늘의 뜻을 알고...무슨 카페길래?"


 이립은 쌩~뚱맞은 위치에 있다. 한경면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위치인데 여느 제주도의 카페들이 그렇듯 먼저 그 공간이 자리를 잡고 나면, 그래서 사람이 좀 생기고 나면, 이어서 숙박이나 이웃 상가들이 생기는 그런 위치랄까. 그래서 한경면의 한적한 도로를 잠시 달리다보면 저 앞에 쌩뚱맞게 툭 튀어나온 건물이 있어서, "아 저긴가"하는 생각을 하면, 그게 맞다. 컨테이너로 세워진 3층 높이의 건물에, 차를 대고 헐벗은 계단을 올라서 실상은 3층 높이의 2층으로 올라가면, 이제 쌩뚱맞은 컨테이너에 유리벽으로 된 공간이 나오고, 그 문을 지나면, 여기까진 역시나 예상 가능한 흔한, 그러나 유니크한 귤밭뷰가 나온다. 날이 맑을 때 오는 게 좋았으려나. 

 나는 주차를 하고 올라갔기 때문에 이미 카페 안에는 아기가 소리를 꽥꽥 지르며, 새로 만난 장난감들을 만져보겠다고 야단, 그걸 말리는 아내의 찡그린 눈썹이 또 야단이다. ㄴ자로 꺾인 공간이라 입구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안쪽에 들어가서 아이가 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급 말괄량이가 되어놔서, 노키즈존은 커녕 케즈케어존도 가기 어려운 우리인데 사장님의 배려가 고맙다. 


 짐을 내려놓고 아내를 따라서 카운터로 가 주문을 하는데, 카운터 옆에 서가에는 편지와 편지지가 나란히 놓여있다. 


"오빠 여기가 레터 서비스 해주는 곳이야."

"응?"

"여기서 편지를 쓰면 교환해가는 거래."

"어 랜덤?"

"응 랜덤이래."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쓰고 맡기면 다른 사람이 랜덤하게 가져가고, 나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랜덤을 가져가고. 그런 식이구나. 마침 서가에 편지가 몇장 깔려있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는 아일 볼 테니 나만 편지를 쓰란다. 흐응. 요즘 손글씨 쓴 지 오래되어서 글씨가 나빠졌을 텐데. 

 잠시 뒤에 차가 나왔다. 단호박과 팥앙금으로 만들어진듯한 양갱도 서비스되었다. 차는, 뭐 아는 그 맛. 그러나 여기의 귤밭 위로 드러난 오름의 능선은, 맑은 하늘에 오면 멍 하니 내내 바라볼 그런 공간이다. 흐린 날 와서 아쉽다. 맑은 날 다시 오면 좋겠지만, 새해 다짐으로 파워블로거가 되겠다는 다짐을 세운 아내에게는 보고 또 보고 액티비티는 좀 어려우시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하며 나는 편지지를 마주하고, 무엇을 쓸까 골똘히, 생각해본다. 


 아내에게 써야하나, 아이에게 써야 하나, 아니면, 누구에게. 


 이 편지가 오늘 쓰여진 뒤로는 나에게 의미랄 것 없이 사라질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 나의 목소리가 과연 마음에 닿을지, 아니면 피식 웃어버리고 휴지통으로 향할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것은 나의 태도도 마찬가지겠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 손으로 쓰여진 언어를 내가 무엇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그것은 또 모를 일.

 편지지를 두고 아직 글감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우리 건넛자리에, 손님을 두 분 모시고 앉으셨다. 두 분 손님은 내 아버지 연배의 남성들이시고, 그분은 젊은 2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사장님과는 제주도에 와서 알게 된 사이인듯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사장님과 손님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연이, 사장님이 어떻게 이 제주도에 와서 카페를 열게 되었다는 이야기, 카페를 열고 나서 어떤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장님은 서울에서 몇가지 카페 일을 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카페를 열 공간을 물색 중에, 제주도에 가면 싹싹 모으면 카페를 열 수 있겠다는 결심에 '뜻을 세워' 이 귤밭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건물 사장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라는, 그분과 있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 


 그것이 이 공간의 주인의 뜻 세움이었겠거니, 그리고 뜻을 세워 몸을 일으킨 뒤에 겪은 일들이려니, 하며 나는 나의 지난 시간을 심심히 돌아본다.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아이가 생기고 동시에 나 자신도 대학원을 다니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2년의 육아와 대학원 생활이 마무리되어가는 지금, 그 소회는 비록 불혹은 아니고 이제야 지우학에 이립을 오간다. 다시 뜻을 세우고, 다시 배움에 뜻을 두는 삶. 


 그 뜻과 배움 사이에 아이는 큰다. 아빠의 다리에 매달려서 안아달라고, 아직 펜을 들지 못한 나를 부른다. 

 나는 문득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새해 첫 날 뜨는 해를 바라보며 정리한 많은 생각들. 늘 그렇듯 내가 걸어온 시간엔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이 길을 걷는 동안엔 수 없이 괴롭고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두 해는 흘렀다. 아이는 컸고, 나는 첫 학위논문을 마쳤다. 제주도에 온 둘째날에 수료 사정 연락을 받았고, 이제 딱 두가지 일만 마무리하면 나는 다음 학위 준비를 할 자격을 얻는다. 


 그 길은 지금보다 길고 힘들 것이다. 

...편지를 쓰는 동안 글쎄, 이 말과 낱말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이 편지를 받아볼 타인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또 글쎄, 내가 이렇게 힘들게 걸어온, 걸어갈 길이란 것도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또 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제주도에서 하루하루도, 내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도, 모두 의미를 따지면 따질 수록 알기는 어렵고 그럼에도, 배는 주린다. 목은 마르다. 또, 이유를 모르더라도 살아가고 아이를 돌보고, 그렇게 살겠지. 

 결정적으로 편지 분량을 1/4정도만 남긴 상태에서 마지막 문단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가 이제는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그래서 이제 아이를 안고 한 10분 여는 연필을 놓았다. 나아감도 멈춤도 아이를 위해, 아내를 위해 이루어지는 일. 나는 아이를 충분히 달랜 뒤 아내에게 맡겼다. 아이는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카페의 기물을 건드리고 엄마의 눈썹을 찡그리게했다. 그래, 그것이 아내의 나아감과 멈춤이기도 하다. 다행히 편지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그때 고개를 드니 아주 잠시였지만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는 사장님께 여러번 죄송함과 감사함을 표하고 편지를 교환한 뒤 이립에서 물러났다. 그래, 타인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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