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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31. 2023

내가 사랑하는 카페, 뚜이

협재에서 딱 눈에 띄는 빨간 지붕

 카페 뚜이를 처음 가본 것은 2020년 1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이었다. 나와 아내는 처음으로 제주도 장기 여행을 와서 20여일을 묵었다. 하루는 마침내 겨울 칼바람이 잦아들어 비양도에 갈 뱃길이 열렸다. 그래서 한림항에서 배편을 끊은 뒤 시간이 남아, 아침도 먹을 겸, 시간을 보내려 협재를 걷다가 불현듯 발견했다. 이 붉은 지붕을. 가볼까, 하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고 아내는 선선히 그에 따랐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 카페 안마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뒤, 오늘,


"죄송한데 사진만 찍고 내려가시면 안됩니다-."

"아아. 들어갈 거예요 잠시만요."

"네에 네에. 아 오늘 몇 팀이나 와서 사진만 찍고 가버렸어 속상하게-."


 나는 우리 숙소에 잠시 머문 다른 부부 중, 형님쪽과 둘이 먼저 나온 참이다. 부부 세 쌍 중에 우리 둘이 유독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 다른 일행들이 10시까지 근처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오기로 하여, 그 전에 아침에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운 좋게도 마침 비양도를 바라보는 협재 바다가 파란 하늘이 탁 트였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제법 찍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30여분 뒤에 밖으로 나왔을 땐, 하늘은 온통 먹구름. 하여튼 제주도 날씨도 귀신같다. 

 뚜이는 흔한 낡은 시골집 분위기의 카페다. 제주도에 이제 이런 구옥을 리모델링한 카페가 쎄고 쏐다. 나는 노상 그런 카페를 거북해하는데 유독 이곳은 좋다. 구옥도 구옥 나름인 것이라 동그러니 흙바닥에 돌집 두 채 있는 것보단, 이렇게 구석구석, 사람이 오래 살며 가꾸고 다듬은 흔적이 듬뿍 남아있는 이 곳이 벌써 좋았다. 게다가 카페가 되고 난 뒤에도 딱히 돈을 들인 것이 아니라 하던대로 있던대로 대강 대강 손보아 꾸며놓은 것이 이 아니 편할 쏘냐. 나는 2년 전과 바뀐 것이 거의 없는 안마당을 보고 한 없이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을 느꼈다. 


 이 안마당이 참으로 아늑하고 아리따워서 그렇게들 사진만 찍고 도망을 간다고 한다. 2년 전에도 그러했다. 사실 안에 들어가서 커피 맛을 보고 사장님과의 토크를 잠시 맛보면 안마당에서 찍는 사진보다야 훨씬 좋은 공간인데, 여행을 하는 것인지 사진을 박으러다니는 것인지 요즘의 세태가 사람들을 여럿 피곤하게 한다.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창밖으론 잠시 드러난 청명한 아침 햇살이 비스듬이 따스한 고사리손을 집안에 들이고 있다. 

 여기, 아기자기하고 편한 공간.


 나는 사람의 손길 이상 가는 인테리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낡은 벽에는 그 벽에 기대고 살던 사람의 시간이 묻어나는 법이다. 요즘의 미니멀 인테리어로 사람이 살던 흔적은 싹 다 밀어내고 그저 흰 벽, 그저 미색 커튼. 그리고 알 수 없는 나무 조형물들. 그런 공간에 비하면, 전에 살던 누군가의 흔적에 더해진 사장님의 삶의 흔적들이 가득한 여기가 세상 편하고 부럽다. 뉴질랜드에서 자녀를 키우고 제주도에 들어와 여기 자리잡은 것이, 벌써 삼년 하고도 반. 


"아 너~무 열악해요- 나도 한달살이 해봤으면 제주도 안 살았을 것 같애-."


 사장님은 내가 두 해 전에 찾아왔던 이야기와, 지금은 한달의 느긋한 일정이라는 말을 듣고 제주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톡 털어놓는다. 그래 열악하지, 그럴만하지. 시골은 시골인지라, 또 섬은 섬인지라.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길은 좁다. 병원은 멀고 물가는 비싸다. 뉴질랜드의 복지나 시티 인프라를 경험하다 오셨으니 그럴만 하다. 


 아마 우리에게도 이런 제주도 살이의 낭만은 지금 한창 때의 젊음으로 불편함을 능히 즐길 수 있을 떄에 한할 것이다. 같은 공간이 누군가에겐 삶의 현장이고 누군가에겐, 사진이나 박고 지나가는 그런 곳이 되는 것처럼.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더욱 이 공간이 편안해졌다.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알아챈 기분. 

 카페 곳곳엔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아온 사장님의 컬렉션이 쌓여있다. 메뉴에도 뉴질랜드 맥주라거나 디저트와 브렉퍼스트의 구비도 그렇다. 카페 공간이 워낙 예뻐서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한번씩 사진을 찍으러라도 올라와볼만한 곳이다. 그래서 이 공간이 코로나 시기를 견디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 


 가게 내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사장님께서 커피를 내리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오는 풍경과 동그란 노란 전구의 빛을 보고 멍하니 마음을 비운다. 이렇게 창으로 안마당을 바라보는 무상한 시간이 좋다. 귓가엔 잔잔한 클래식이 귀에 걸린다. 음악을 전공한 사장님의 취향 따라, 가장 이 공간에 적합한 음악이 한층 이 기묘한 명상에 색채를 더한다.  

 커피가 나왔다. 탄자니아AA는 상남자 헤밍웨이가 좋아했을 만하다. 첫느낌은 강한 산미가 느껴지고 진하게 추출된 커피의 바디감에 스모키한 풍미가 올라온다. 그리고 옅은 떫은맛과 함께 마무리. 여운이 짙다. 뚜이의 클래식 음악에 어울리는 차분하고 묵묵한 그런 커피. 이 아침, 비바람에 지친 몸에 심장의 박동으로 기운이 북돋아지는 느낌이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우유가 워낙 풍족하게 나고, 그 우유를 커피와 함께 마시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 곳곳에 좋은 카페가 많다. 그러니까 사장님의 커피 맛의 수준도 높다. 라떼류를 먹어보면 더 좋았을 테지만, 초행에, 2년만에 오는 길에, 커피를 평가하려다보니 라떼를 요청할 수가 없다. 


 나는 집 근처에 있으면 여기에 매일도 올 수 있겠는데, 아무래도 제주도에 있는 동안에도 쉽지는 않다. 우선 아내는 한번 가본 카페는 어지간하면 다시 가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오기엔 여기는 깨먹을 수 있을만한 것들이 너무 많다. 아빠 혼자서 달랑 여기서 놀다가기엔 여러가지로 곤란하고 어렵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여기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비록 오늘조차도 50여분의 짧디 짧은 방문이었다 할지라도. 

 다시, 개었던 하늘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행들을 만나서 식사를 할 시간이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다시 당분간은 오지 못할 것을 예감하며 나는 헤밍웨이의 커피를 입에 털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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