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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06. 2023

제주도 식당 말고 공장에서 순대 족발 사먹기

한림 금하순대

 그러니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제주도에 당도한 첫날이었던듯한데.


 아이를 재우고 겨우 침대에 몸을 누이고서 나와 아내는 이제부터 한달,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각자 검색과 계획 세우기의 시간을 보냈다. 여행의 첫날 밤, 아직 깨어지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치를 수 있는 호사다. 나는 누워서 한림의 여러 골목들을 인터넷으로 누비기 시작했고, 저렴한 흑돼지 돈까스 무한리필 집이라거나, 주민들이 주로 갈만한 돼지고기집이라거나, 등등을 성실히 찾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네 글자 금하순대. 이름은 순대인데 지도상에 아이콘이 식당 모양으로 생기진 않았다. 이런 경우에, 맛집은 아니라는 뜻일 터인데, 어럽쇼 탭해보니, 별점과 리뷰가 뜬다? 뭐지? 하고 조금 더 검색해보니, 식당이 아니라 공장이다. 순대와 머릿고기, 족발과 내장을 파는. 그런데, 인기가 좀 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이틀 뒤에 와 보았다. 금하순대.

 원래는 우리 한달살이 숙소에 방문한 다른 두 커플들도 모두 순대와 족발은 좋다길래 야식으로 먹기 위하여 바로 다음날 공장에 들르려고 했는데, 소길리 방면에 있는 녹색식당을 가려다보니 아침에 조금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그날은 가지 못하고 다음날 방문.


 제주도 3일차까지 지독하게 폭설이었다. 그래서 10시 무렵 공장을 찾았을 때는 공장 앞에 늘어선 트럭들도 눈에 하얗게 뒤덮여있다. 눈발이 이렇게 생생히 찍힐 수 있는 강설량이라니. 그런데 그걸로 순대공장이나 찍고 있다니. 뭔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마침 공장 앞에서 노란색 버킷을 물청소 하고 있는 어르신이 보여, "순대 사러 왔는데요." 묻는다. 어르신께선 손으로 오른 편 끝을 가르키신다. 좋아. 소매가 가능하다더니 바로 살 수 있겠구나.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무실 공간이다. 눈을 피해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듯하고 아늑한 작은 방이 나온다. 담당하시는 직원이 보이지 않아 구경을 하다가 메뉴판이 보여 구경을 했다. 1kg에 만원, 그리고...족발이 있다? 그리고 오소리감투에 허파와 간. 야 이거 제대로네.


"어떻게 오셨어요."


하며 잠시 뒤에 사무실 직원분께서 나오신다. 나는 찹쌀순대와 족발을 하나씩 부탁했다. 부가세가 천원씩 붙어서 2만8천원. 나는 쏜살같이 묵직한 짐을 들고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셋째날의 여행을 시작. 순대와 족발은 저녁까지 다 먹고 들어와 야식으로 쓸 예정이다.

 밤에 봉지에서 다시 순대와 족발을 꺼내니, 야 이거 제법 묵직하다. 1kg이 대창은 아니고 소창으로 찹쌀 가득 넣고 만든 순대가 네 줄. 이거면 아무리 싼 곳에서 먹어도 2만원은 되는 양이다. 기분 좋은 거래에 마음이 가볍다. 족발은 더더욱. 앞발로 만든 놈 같다.


 나는 불을 올려 두개를 나란히 넓대대한 후라이팬에 넣고 물로 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를 씻기고 방에 들어가, 먼저 아이부터 재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운 뒤에 방에서 나와 마지막 밤의 야식 파티 시작이다.


 그런데 아이가 이 날 따라 영 잠에 들지 않았다. 9시가 되기 전에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10시반이 넘어도 잠들어주지 않는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아 빨리 순대 썰어서 내가야 하는데."라는 것이었다. 아이야 이러다 잠은 자겠지. 과자도 술도 있으니 손님들이야, 내가 순대 안내어가도 놀기는 놀겠지. 그러나 내가. 내애가 궁금하고 해보고 싶어서 조바심이 난다. 저 순대, 도마 위에선 어떨까?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이리 눕히고 저리 눕히며 우풍이 제법 드는 작은 방에서 한참을, 아내까지 불러서 씨름. 그리고 마침내 11시가 넘어서야 나는 방에서 나왔다. 바로 냄비와 족발로 직행한다.

 부추를 미리 사왔다. 데쳐서 순대에 곁들여먹으면 그만이다. 마트에서 쫑쫑 썬 마늘고추와 쌈장팩도 팔길래 사왔다. 그리고 백김치도, 더한다. 김치 역시 네 포기를 집에서 가져왔다.


 순대에 칼을 대자 마자 속까지 폴폴 끓여져서 뜨끈뜨끈하니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제법 뜨겁다. 손을 후후 불며 예쁘게 썰어낸다. 접시에 부추와 순대를 차근히 담는다. 그런데 족발은 좀 말썽이다. 기름기가 가득해, 이리 저리 굴려가며 살을 뼈에서 발라내는데 쉽지 않다. 못할 정도는 아니고 딱 쉽지 않은 정도다. 아강발 쪽은 떼어내서 빼두고, 접시 사이즈에 맞게 다리에서 앞뒤로 발라낸 살들을 펴 잘 썰어본다.


 냉족이 아니라 온족인 상태라 칼이 쉽게는 들어가지 않는다. 자연히 두툼한 상태로 썰 수 밖에. 그러면서 한 입 먹어보니, 야 이거 맛있다. 간간하고 슴슴하니 부드러운 맛. 맛대가리 없이 삶아진 그런 족발은 아닌 게다. 속도를 내서 안방에 동그라니 모여앉은 일행에게 가지고 간다.


 테이블은, 어제와 엊그제 그랬듯 캐리어를 펴서 만든다.

 새우젓에 부추를 곁들인 순대. 한입 무니 찐득하고 달달한 제주도 순대 그대로다. 처음 제주도에서 순대를 먹으러 갔을 때, 처음에는 찹쌀이 가득 들어간 순대의 식감이 이질적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와 순대국밥을 먹으며 별도로 시킨 순대가 양이 좀 많아, 버리긴 아깝고 하여 호일에 싸서 가방에 담아왔었다. 서울로 올라와 짐을 풀며 그제서야 다 식은 순대를 발견해, 짐을 풀다 말고 호일을 까서 입에 넣었다. 야 그런데 그 맛이 입 안에 찹쌀의 달달한 맛이 자르르 번진다.


 오늘 먹어보니 이 순대며 족발이며 돼지의 잡내는 하나 나지 않고 달달하다. 아내는 순대 따위를 일절 먹지 않는데도 잠시 뒤엔 "이건 먹을 수 있어."라며 순대를 홀홀 입에 넣는다. 아니, 전주에서도 천안에서도 실패한 순대 취식이 제주도에서 성공할 일인가? 싶을 정도. 잘 된 일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순대 취향에 대하여 떠들며(다른 커플들도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명씩은 끼어있었다.) 즐겁고 맛있게 식사를 계속했다. 아니 야식이구나.


 접시가 적당히 비워져갈 무렵 나는 일어나 남은 아강발과 다리뼈를 손질해 따로 접시에 내왔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푸짐하다. 여섯이나 되니 야식으로 이게 소진이 되었지, 둘이서는 순대 1kg도 버겁고 넷이서는 순대아 족발을 같이 먹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틀 뒤에 새로이 방문한 다른 손님들을 위해 똑같이 순대와 족발을 내었는데 반도 다 먹지 못했다.


 가게에서 순대를 만드는 집은 여간해선 요즘 보기 드물다. 물론, 가게에서 만드는 집들은 여지없이 맛집이다. 그러나 속초의 오징어 순대나 제주도의 찹쌀 순대처럼 그 요리의 지역색이 가게 각각의 색깔보다 강하다면 각각의 집에서 순대를 만들 필요는 없게 된다. 공장에서 떼 와서 내면 열 집이 한 가지 맛이 날지라도, 외지인들은 기꺼이 사먹으니까.


 금하순대는 내가 보기에, 글쎄, 몇십년간 직접 순대를 만드는 그런 집들이 따로 있긴 하겠지만, 무려 우리 아내가 트라이해서 성공한 깔끔하고 잡내없는 순대다. 내가 먹기에도 이정도면, 훌륭하다. 이 순대를 떼와서 파는 집들도 손님들도 아마도 만족스러울게다. 물론 이걸 집에서 조리하는 수고에 비하면 가서 먹는 게 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금하순대에 현재까지 세번을 갔다. 손님들을 맞을 때마다다. 양이 무식하게 많아 아직 다 먹지 못한게 냉장고에 남아있지만 마음은 넉넉하고 즐겁다. 맛있는 요리가 내집 냉장고에 대기하고 있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드무니까. 조만간 돼지 찌개거리를 사 올 예정인데 그걸로 순대국밥이나 한사발 만들면, 그것보다 좋은 겨울의 아침식사는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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