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거버넌스의 세가지 원칙
학생생활인권부장, 다시 말하여 옛 학생부장님에게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답은 당연히 첫번째는 공문, 그 다음으로는 의외의 답변이 날아왔다.
"아이들 두발 잡는 거나 생활지도 하는 거나, 생활인권부 선생님들만 하는 걸로 생각들을 하세요 선생님들이. 같이 좀 해주면 훨씬 학교 분위기도 좋아지고 지도도 쉽거든요."
교권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야 좀 혈기넘칠 나이의 선생님들이 복도에 나서기만 해도 괜히 트집 잡힐까봐 우르르 아이들이 복도로 피신을 했다. 그런 시절에는 체벌과 폭언을 곁들여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교직관도 변하고, 이제 그런 힘든 학생 생활지도는 담당부서의 교사들에게만 맡겨져 있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생활지도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학생부장님에게는 업무를 힘들게 하는 한 요소였다.
요즘 고등학교 단위에서는 가장 힘든 부서의 부장인 교육과정부장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답변은 공문보다도, 교사들의 참여와 협력이 아쉽다는 것이었다. 특히 교육과정은 2015 개정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라는, 학교 운영의 틀을 완전히 뒤엎는 수준의 대작업을 학교 단위에서 교육과정부장들이 맡아서 하고 있다. 학교장이나 교감조차도 이 업무에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담당부장에게만 일임을 한다. 교육과정 대개혁의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하를 서로 나누고 도우며 협력해야 하는 교사조직의 문화가 필수다.
그런데 교육과정 편성에 자기 부서의 이익만 주장하거나, 정책 변화에는 무관심하고 그저 옛날 그 방식, 옛날 그 부장 이야기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교육과정 업무가 쉽지가 않다. 시대상황에 맞추어 교사조직이 함께 움직여주어야만 학교교육은 움직인다. 그런 점을 교육과정 부장은 말하고 있었다.
학교교육은 누가 하는 것일까? 1년에 한명 학생이, 고등학생의 경우, 8개에서 10개 과목 정도를 듣는다. 동아리활동과 창의적체험활동까지 고려하면 한명의 학생이 1년에 10여명, 3년 다합쳐 30명 이상의 교사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한명의 교사는 1년에 100명에서 150명정도까지 요즘엔 가르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치 나무 뿌리가 얽히듯 수백명의 인원들이 서로 얽히고 섥히며 학교교육을 만들어간다.
얽히고 섥힌 문제는 대부분 '시스템'을 접하면 잘리고 나눠지기 마련이다. 학교는 여러개 부서에서 일을 나눠 행정업무와 교육지원업무를 처리한다. 학사운영은 교무부, 학생관리는 학생부, 시험은 연구부. 이러다보니 교사들은 관료제적 사고에 젖어, 내 일에만 바쁘지 다른 부서의 업무에는 소홀하기 마련이며, 교사들로 하여금 다른 부서 소관의 일은 신경쓸 수 없도록 학교는 바삐 돌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생 생활지도에도, 거시적인 교육정책 변화에도 소홀할 수 밖에.
그런데 모든 교사들의 협력과 참여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강제되는 학교 업무가 있다. 학교생활기록부, 다시 말하여 생기부 기재다. 생기부는 모든 교사들이 다 함께 또 똑같이 추진하는 학교 내 유일한 업무다. 여기에는 부서의 벽도, 담임과 부담임의 벽도 없다. 담임이 주로 작성하는 진로활동과 자율활동, 행동특성 및 발달사항이 있고 과세특과 동아리 두가지는 모든 교사가 매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 지침으로 교사들이 협력하여 3회의 교차점검을 실시토록 하고 있다. 마치 운동회에서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을 응원하듯, 일치단결해서 함께 생기부의 부족함과 오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생기부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실제로 모든 교사가 동등한 수준에서 기재를 해야 한다. 누구는 적게 쓰고 누구는 많이 쓰며, 누구는 성실하게 교차점검을 하고 누구는 불성실하게 교차점검을 하면, 그만큼 학생들의 학생부종합전형 관리에 누수가 생기는 것이며, 학생 개인에게는 성장기록의 불균형으로 나타난다. 교사들은 다 안다. 정말 성실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를 어떤 교사가 생기부를 텅텅 비워놓는지. 그런 생기부 기재의 나태함은 교사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부르고, 업무협력을 깨치는 요인이 된다. 아이들 생기부를 개판쳐놓고도 떳떳하게 학교를 다니는 교사가 다른 업무 또한 제대로 할 것이란 기대는 어렵다.
생기부 업무가 학교에 미치는 영향을 '거버넌스'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생기부는 모든 교사들이 참여하는 필수 업무인데, 교사와 학생과의 대화와 같은 것이라 교권의 일부로 간주되어 다른 교사들이나 학교 관리자의 개입이 제한된다. 즉, 생기부 기재는 교사들에게 권한위임(임파워먼트)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각 교사에게 임파워먼트된 생기부 기재가 3회 교차점검을 통해 전원 협력하게 되어 있으며, 그들의 협력의 결과가 학생 한사람 한사람의 성장평가와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니, 그만큼 통합성이 강조되는 업무이기도 하다.
이러한 거버넌스에는 세가지 결정적 요소가 있다. 개방성과 투명성과 통합성, 업무지원, 효과적 협력이 그것이다. 첫번째 개방성과 투명성, 통합성을 보자. 개념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들 모두 사안과 의견 공유가 전체 조직원들 간에 수평적으로, 막힌 곳 없이 소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전술한 대로 교권의 일부로 간주되어 학교장조차 큰 문제가 아니면 터치를 못하는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생기부 기재 상황을 누구도 모른채로 한 해가 흘러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한정된 시간 안에 교차점검을 해야 한다. 그것 외에 서로 의견을 나누거나 비판할 기회는 차단되어 있다.
만약에 생기부를 교사들 간에 개방적으로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면 어떨까? 학생에 대한 의견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각 교사들 간에 발전 아이디어도 공유될 수 있다. 이런 원칙 하에 '모든 교사'들이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생기부를 개판쳐놓고 소형 교무실에서 숨어지내는 그런 교사들에게조차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두번째, 업무지원은 현재 생기부 기재의 거버넌스에 큰 부실함이 있는 요소다. 교육청에서는 생기부 작성에 대하여 안된다 안된다 말만 하지, 어떤 생기부가 좋은 생기부이며 내 생기부를 어떻게 가꾸어나갈지에 대해서는 큰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년 배부되는 생기부 메뉴얼은 교육청의 입장에서 교사들에게 지시하는 내용들일 뿐, 교사가 원하는 방식의 생기부 업무 지원이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교사들은 교육청의 지침을 따르랴, 입학사정관들 연수 내용 참고하려, 그러면서도 모든 아이들을 개별화해서 써주어야 하니 갈피를 잡기 어렵다. 생기부 기재를 위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내가 2년간 생기부 담당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업무지원이었다.
세번째 효과적 협력은 광범위한 의견교류와 업무지원을 통해, 실제로 효과적인 공동작업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최근 서울의 한 공립학교의 이야기를 들었다. 12월에 생기부 기재를 모두 끝마치고 3회 교차점검을 하는데, 1,2회는 교사들이 교차점검을 하고 3회째에는 교감 한사람이 전체 모든 학생의 생기부를 검토한다고 한다. 말이 되냐고 하니, 내게 이야기를 전달한 친구 역시 큰 문제의식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공동작업을 빠르고 심플하게 할 순 있다. 그러나 그것은 효율적인 것이지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교감 한사람이 6,700명의 생기부 전체를 하루 이틀만에 어떻게 본다는 것일까. 그냥 요식행위, 그냥 교감이 교사들에게 자기 체면 구기지나 말라고 으름장 놓는 실효성 없는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협력이 효과적이기 위해서 최대한의 성과를 위해 조직원들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생기부는 그래야 하는 업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교사들이 똑같이 수행하는 공통업무, 기본업무에서조차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교교육 전반에 교사들의 협력이 원활하지 않을 것은 불문가지다. 아이들의 미래에 직결되는 일조차 쉽게 하려고 애를 쓰는데, 의지를 갖고 자기 교육과정을 재구성해가며 수업을 하고 좋은 생기부를 위한 수행평가를 만들고 그걸 지필평가에 연계할까?
거버넌스 관점에서 생기부는 학교교육의 지표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생기부 기재가 각 교사의 교육과정 설계에 있어서 핵심요소가 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제도가 존속하는 한 생기부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교사들은 노력해야 한다. 그럼 좋은 생기부를 위해선? 수업을 바꾸고 수행평가를 바꾸고, 수업과 수행평가 따라서 지필평가까지 바꿔야한다. 그런 노력을 매년 지속하며 생기부를 일신해나간다.
"Backward 수업 모형"은 먼저 평가를 성찰하고 그 뒤에 수업을 구성하는 것인데, 생기부의 내실있는 기재를 고민하며 그에 맞춘 수업과 수행평가가 나올 때 일관성 있는 교사별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하다. 이런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수업 따로, 수행평가 따로, 지필평가 따로, 그리고 수행평가는 80%가 만점을 맞는 그런 기형적 평가결과가 나온다. 어떻게 아이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기재할지 고민을 해나가는 교사들이 더 나은 수업과 더 나은 생기부를 만든다.
즉, 거버넌스의 측면에서 생기부는 학교조직의 소통과 협력, 최상의 결과를 위한 노력의 지속을 의미한다면 수업설계 측면에서 생기부는 교사의 수업과 평가를 일관성 있고 높은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생기부 기재가 학교교육과정의 핵심이라고 단언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2020학년도와 2021학년도에 생기부 담당자를 했다. 인수인계를 받아보니 우리학교의 생기부 체제는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전임 교무부장이 신경을 쓰지 않고 생기부 계원에게 일임했고, 나이도 젊고 연차도 되지 않아 '끗발'이 안먹히는 생기부 담당자는 다른 교무부 업무에 치이는 와중에 학교의 엉망이던 생기부 체제를 손대지 못했다.
나이도 젊고 연차도 짧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는 혁신교사라, 사람들의 욕을 먹는 것은 이골이 난 터였다. 7월에 1학기 점검을 다녀와서 그 결과를 명분 삼아 선생님들을 달달 볶았다. 과세특을 따로 뽑아 세 차례, 무작위로 교사들이 교환해서 교차점검을 하도록 했다. 물론 그래도 안할 사람은 하지 않았지만, 기껏해야 담임끼리 학급 전체 인원을 교환해서 돌려보고 끝이던 우리 학교의 3회 교차점검 체계를 깨고 모든 교사들이 참여해, 내 과세특이 누구에게 보여질지 모른다는 인식을 심어주어 개방성과 투명성, 통합성을 끌어올리고자 했다. 2년차에는 생기부 작성틀을 만들어 모든 교사들에게 업무지원을 해주겠다고 공언하고 그를 실천했다. 물론 그 역시 모든 교사들이 호응하진 않았지만, 거버넌스로 우리 학교의 생기부 체계를 바꾸어나가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해서, 효과적인 협력이 이루어졌을까? 내가 학교장이 아니어서 거기에 이르진 못했다. 생기부 기재의 거버넌스와 효과적 협력에 이르기까진, 학교 조직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동력과 함께 투명한 소통, 긴밀한 지원이 지속되어야 한다.
생기부에 대하여 아직 '어차피 3등급 이상인 아이들만 의미있다.'라거나, '애들이 안하는데 어떡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학교에도 많다. 그러나 생기부가 학생의 미래에 아주 작게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나는 모든 교사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의 성장기록이자 나 자신의 수업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르치는 백여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나는 단 한번뿐인 생기부 한 칸의 주인이다. 우리 모두의 칸과 칸의 결합으로 아이는 일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