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크, 우리 아이의 생기부

by 공존

<블링크>라는 책이 있다. 나온지 어언 15년이 넘은 책인데, 2000년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의 대표작 중 하나다.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Blink, 눈 한번 감빡하고 다시 응시하는 2초 사이에 우리가 상대방에 대하여, 대상에 대하여 알게 되는 첫인상이 얼마나 풍성하고 디테일한 정보를 담아내고 이루어지는 판단인지 논증하고 있는 책이다.


블링크, 우리는 무언가를 보는 순간 평생에 걸쳐 누적된 정보를 잠재의식 속에서 소환하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판단해 낸다. 다시말하면 지금의 나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경험의 빅데이터에서 대상에 대한 공통정보를 추출하여, 대응전략을 구상하는 것이다. 그러한 '첫인상'으로 만들어지는 선입견 역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깜깜이 상태에서 대상과의 관계맺음을 가이드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상당히 선입견에 기대어 산다. 다만 선입견이 편견으로 흐르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한다. 선입견은 지식의 문제이고 편견은 태도의 문제다.


지난주에 우리학교에서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영어 과목이므로, 아이들이 각자 롤모델을 정하고 그것을 소개하는 짧은 에세이를 영어로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수행평가는 생기부에 적히는 주요 학습활동이다. 수행평가 이외에도 얼마든지 생기부 500자를 다 채울 수도 있지만, 좋은 교사라면 수업과 수행평가를 연계하여 교과수업 내에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맥락 있게 서술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자기의 롤모델을 쓰는 일은 교사에게 단지 생기부에 기재될 분량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개개의 특성을 알고 진로지도에 도움을 주는 밑바탕을 그리는 활동이기도 했다. 하여 교실을 계속 돌면서 아이들의 첨삭을 해주는데, 내 눈에 '마리 퀴리'가 눈에 들어왔다. 위대한 여성 과학자 퀴리부인.


퀴리부인은 정말로 위대한 여성과학자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러시아의 식민지 상태였던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잠재력을 뽐냈으며, 프랑스로 유학을 가 가난한 형편을 견디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고 X선을 개발에 기여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마리 퀴리가 X선을 이용해 진단한 부상병만 100만명이라고 하니, 그녀의 세계사적 공헌 수준을 짐작할만한다. 그리고, 그런 마리 퀴리는 평생에 걸쳐 여성이라는 굴레에 묶여있었다. 남성 과학자들로 가득찬 유럽의 지식사회는 그녀를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노벨상 수상이나 왕립 아카데미 가입에 크나큰 진통을 겪곤 했다. 그런 성차별을 극복하고 수많은 업적을 남긴 그녀를, 고등학교 1학년, 이제 막 자신의 진로개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여학생이 롤모델로 삼은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슬그머니 이렇게 말했다.


"퀴리부인은 생기부에 작성하기 적절하지 않으니, 기말고사가 끝날 때까지 다른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을 찾아서 적어와보렴. 그럼 생기부에 함께 적어줄 테니."




왜 퀴리부인 같은 위대한 여성과학자가 생기부에 적히기 적절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입학사정관들과 대학 교수들이 매년 수천 수백명의 생기부를 검토하며 누적된 경험의 총합, 그로 인해 형성하게 되는 인상들과 선입견의 문제가 있다. 롤모델로 퀴리부인을 쓰던 아이는 정말로 훌륭한 학생으로, 외고 진학을 포기하고 일반고에 와서 중간고사에서 영어과목의 경우 만점, 다른 과목들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다. 수업 태도가 정말 바르고 올곧다. 빼어난 학생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의 훌륭한 특성을 내가 생기부에 아무리 적어준다 한들, 마리 퀴리 혹은 퀴리 부인 네 글자가 적히는 순간, 블링크는 발동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선입견은 그것으로 형성된다.


아, 우선 학력이 좋은 지역 아이는 아니군.

아, 따로 관리를 받은 학생은 아니군.

아, 학부모가 신경을 써주는 아이는 아니군.

하는.


수천 수백명의 생기부를 검토하는 입학사정관이나 대학 교수의 입장에서는, 롤모델로써 마리 퀴리를 뽑는 학생과, 위대한 여성 과학자로 왜 마리퀴리만 꼽히지? 라고 스스로 의문을 품고, 그것을 추적해나간 흔적이 있는 학생들의 차이가 완전히 다르게 인식될 위험이 있다. 컨설팅 받아서 기재되는 생기부에는 "왜 마리 퀴리를 롤모델로 꼽았니?" 라는 질문이 함께 담긴다. 그러면 "왜 다른 여성 과학자를 꼽지 않았지?" "왜 위대한 여성과학자는 이리 적지?"라는 질문이 또 함께 담긴다. 그것을 알아나가다보면, 유럽에서 과학자들을 길러내는 과정에까지 닿고, 근본적으로 여성이 중등교육, 고등교육에서 차별받아온 것까지 알게 된다. 물론 그런 차별을 뚫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퀴리부인은 정말이지 위대한 인물이지만, 이런 맥락까지 모두 담기지 않으면 퀴리부인 네 글자는 힘을 잃는다. 저런 지적 과정이 수행되었고 되지 않았음이 수천명의 생기부 검토 과정에서 차별화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배경을 수행평가가 끝난 다음날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생기부에 대한 이러한 컨설팅은 '돈'으로 해결이 되기 때문에, 블링크로 인해 입학사정관들이나 대학 교수는 아이들의 경제적 배경, 지역의 학력 수준까지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고 함께 알렸다. 아무리 교육부 정책으로 생기부에서 지역이나 학교를 가리고 지워도 생기부에 담긴 정보들 자체가 아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넘어서서 그 너머의 배경까지도 알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를 뛰어넘는다. 실제로 우수한 아이들을 가려뽑는 것이 입학사정인데, 블링크된 학생들에 대한 정보는 '직관'이나 '인상'일뿐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도 없고, 그것으로 차별을 하는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마리퀴리를 쓴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마리 퀴리 말고 다른 위대한 여성과학자를 쓰고, 그것을 여성과학자들이 겪은 차별까지 설명한 학생이 더 나은 학생인지는 그저 심증으로 남은 상태에서 평가가 된다. 그렇다면, 더 나은 배경과 경제력을 갖추었을 확률이 조금더 높은 학생을 뽑을까, 그냥 마리 퀴리 쪽을 택할까?


생기부는 학생을 Representation한다. 영어에서 representation은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인데, 일반적으론 '재현'이라는 어려운 개념으로 번역된다. 재현은 어떤 사물을 현실에 되살려낸다는 뜻인데, 원본을 그대로 옮겨낼 수는 없기 때문에 '대표적 요소'들로 재현된다. 피카소의 소의 그림은 실물적 묘사에서 대표적 요소로 representation의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교사의 생기부는 학생들 그대로 생생한 사물을 담아내지 못한다. 아이들의 대표적 특성들, 요소들만을 가려 담는다. 동시에 생기부에 representation된 이 대표적 내용들을 토대로 평가자는 학생의 대강의 모습을 이해한다. 뼈대의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블링크되는 인상들이다. 간단한 뼈대를 보고 소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듯, 마리퀴리, 성실성, 창의성, 등등 이런, 생기부에 대표된 내용들을 가지고 입학사정관, 교수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만나온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강남 출신의 컨설팅 받아서 면접에 선 아이, 그런 관리를 부모로부터도 학교 교사로부터도 받지 못한 아이.


따라서 우선 교사들부터가 생기부에 들어갈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토씨 하나하나 고민하며 작성해야 한다. 생기부 500자 모든 단어가 아이의 representation 요소다. 그것을 통해 평가자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다. 그 모든 것은 블링크, 눈 한번 깜빡하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어떻게 써야 할까? 어떻게 도와야 할까? 나는 아이를 위해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책을 몇권 찾아두었다. 교육예산으로 사주는 게 옳을까 아이가 사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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