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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07. 2023

진도까지 와서, 돈까쓰를 먹어야 하는 이유가?!

생각보다 근본의 맛

"안돼. 줄 길어."

"진짜?"

"어 가자 그냥. 나 배도 안꺼졌고."


 진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점심을 먹고 나오기로 한 우리는, 일요일에 방문했다가 가게가 쉬는 날인 것을 알고 허탕을 한번 친 바 있는 경양식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점심시간 피크타임인 1시20분 경이었던지라 가게 앞엔 사람이 벌써 예닐곱명이나 줄을 서 있다.


 그러나 우리 아내께서는 그런 일에 굴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자기가 가보겠다고 차에서 내리더니만 나에게 전화를 건다.


"오빠! 별로 없어. 금방 될 것 같아!"

"......"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내의 고집으로 또 한바탕, 곤욕을 치르겠구나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 눈에 보아도 30분 이상 대기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고작 돈까스에. 그것도 서울까지 여섯시간을 운전하고 올라가는 머나먼 길에. 


 게다가 아침에 조식 뷔페를 먹고 나왔기에 나의 배는 아직 소화가 다 되어있지 않았고 그말인즉슨, 굳이 지금 여기서 밥을 먹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라가다가 휴게소에서 먹어도 되고, 바로 위에 목포에서 밥을 먹어도 되고, 그 위에 군산에서 먹어도 된다. 대체 왜. 대체 왜? 진도까지 와서, 이미 한번 허탕도 친 곳에 다시 와서, 연휴 마지막 날에, 30분 이상 기다려서 고작, 돈까스를 먹겠다는 것이냐.


 아내의 고집에 화딱지는 났지만 "진도까지 와서" 하고픈 건 다 하고픈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리고 내가 여기서 아내를 끄집어와서 억지로 가자고 해봐야 뭐 누가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니라서. 나는 꾸욱 참고 차에서 조금 눈도 쉬어주며, 아이랑 놀아주기도 하며 식사시간을 기다렸다. 


"오빠, 스프 나왔어."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정확히 51분의 대기 시간이 지난 뒤.

"얼른 먹어."

"......"


 그렇게 찾게 된 곳은 그냥경양식이라는 식당인데, 진도군청 앞 번화가의 골목 속에 숨어있는 테이블 여섯개 규모의 작은 가게다. 가게 바깥에서만 보더라도 가게의 사이즈에 비해 밖에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의 수가 길다. 그래서 나는 그냥 포기하고 일단 출발하려던 것이었다. 첫날에 와서 진도의 다른 맛집은 한번 가보았다. 2박 일정이었기 때문에 식비라도 줄여보자고 진도의 유명한 꽃게나 전복은 포기하고 밥 메뉴로만 그간 먹었다. 이 식당은 일요일에 가려던 것이었는데...웃기게도,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 한가운데의 일, 월요일 이틀을 가게를 여리 않고 쉬어버린 집이다. 


 아니, 대체 왜? 돈을 벌 마음이 없으신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가게 바깥에서 보기에도, 진도라는 이 나라 땅끝 지역에 붙어서 작게 작게 장사하던 곳이니 무슨 돈 욕심이 그렇게 크겠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스프를 일단 먹어보고, 엇, 이건 좀 놀랐다. 시판 스프는 아니고 고소한 것이, 직접 만드신 것인듯. 흐음. 이 작은 가게에서. 설마 진짜 루를 만들어서 스프를 낸 건가? 양파 조각이겠지? 뭔가 살살 씹히기도 하고. 기분 좋은 버터맛이다. 오뚜기 스프보다 밍밍, 심심, 그러나 구미를 당기는 맛난 스프다. 후추를 솔솔 부려 입맛을 돋우기에 딱 좋다. 

 그리고 이어서 돈까스가 나왔는데,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가게의 사정이 조금 아쉬운 지점. 


 정통 경양식 스타일이라서 스프 한번, 그 다음에 돈까스 접시 한번, 그 다음에 밥과 반찬, 이렇게 총 세번 서빙이 이루어진다. 아 그 전에 물도 한번 있었다. 총 네번! 그럼 지금 바깥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계시고, 주방에 한 분 홀에 한 분, 이렇게 두분이서 장사를 하는 중인데, 이럼 우선 사람을 한명 더 쓰면 되지 않을까. 그럼 한명이 여섯개의 테이블을 네번씩 돌아다니며 서빙하는 것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 텐데. 대기 부담이 그만큼 줄어들 텐데. 


 서빙과 메뉴 구성에서 타협의 여지는 없어보인다. 돈까스클럽처럼 한 접시에 밥까지 낼 것 같지도 않고, 비록 빵이냐 밥이냐 고르게 해주진 않았지만 나름 이렇게 제대로 구색을 갖추어 경양식 스타일로 내주는 집이었던 것이다. "그냥", 경양식. 


 이런 영업방식을 조금만 손본다면 회전율도 향상되고 가게의 서비스 평가도 높아질 것이지만...애초에 이것은 땅끝 진도에서 하는 작은 식당에 와, 외지인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일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요즘 댓글에, 리뷰에,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구구절절히 적는 일이 많은데 그거야, 대도시의 큰 식당에서 요구하면 될 일일 것이고 본래 이렇게 번잡스러운 상황에서 장사를 해보지 않았을 시골의 작은 식당에 와서 외지인이 손님들의 비위를 일일이 맞추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조금 우습지 않은가 하는 게 내 생각.


 우리는 아기가 양배추를 달라기에, 케찹과 마요네즈를 빼고 주실 수 없냐고 여쭈었지만 손님께 드릴 양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면 거절을 당했고, 그러나 밥은 하나 따로 내주셨다. 돈은 받지 않으셨다. 전체적으로, 이렇게 붐빌 집이 아닌데 붐비면서 겪는 홍역이다. 그러나, 나는 사장님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골 식당에선. 

 그런데 이 돈까스...


 앞에서 구구절절이 적어놓았듯 나는 그냥경양식에 입장해 테이블에 앉을 때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아내의 고집에 밤 8시엔 집에 갈 거라던 계획이 9시 정도로 늘어나버렸다. 디아블로4 해야하는데...과제도 해야하는데...등등, 거센 내적 갈등을 겪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이 돈까스를 보면서 내 구미가 당기긴 커녕 심드렁할 줄알았는데 아니 뭐야 이 돈까스 이거 왜이래 이거 안심 맞아? 이거 손일...아니 트, 튀김이...아니 어? 양배추의 상태가...아니? 여기 접시가? 어? 부추나물에 당근에?


 맛있다. 정말, 단언컨데, 맛있다. 이야.


 우선 내가 받아 먹은 안심의 경우, 손질해 놓은 품새가 비상하다. 안심살을 결을 살 살려 펴서 눌렀는데 그래서 고기의 식감이 꽤나 풍성하다. 더 놀라운 건 튀김옷인데, 딱, 집에서 잘 만들어낸 훌륭한 돈까스의 정성들인 맛이었다. 계란물 입혀진 튀김옷이 부드럽게 갈라지며 바삭한 식감을 입안에 전한다. 그 와중에 돈까스를 일일이 눌러 튀겨내신듯. 그래서 서빙도 오래 걸렸겠지만. 게다가 스프 역시 시판 스프의 달기만 한 맛이 아니라 꽤나 진한, 얼큰한 그런 맛이다. 아니 소스까지 이러언. 


 나는,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아기에게 열심히 밥을 먹이고 있는 아내와 돈까스를 깔끔히 비웠다. 아이도 밥이 맛이 나서인지 아주 평소의 식사량보다 1.5배는 되는 양의 밥을 먹었다. 그래, 밥도 고슬고슬 잘 지었어.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진도에 와서까지 굳이 돈까스를 먹어야 하느냐...하면, 굉장히 훌륭한 집이다. 진도에 몇가지 비슷한 식당들이 있는데 지도까지 와서 한끼만 먹고 갈 것도 아니고, 쏠비치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왕이면 진도군청 소재지에서 한번 정비도 할 겸 방문해봐도, 몹시 훌륭한 식사 경험이 될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이런 서로 서로 불편한 접객을 고집하면서 경양식의 구색을 지키고 있는 것도, 이 가정식 스타일의 돈까스를 계속 만들어내주고 있는 것도, 스프며 돈까스며 소스며 다들 비슷비슷 익숙한 맛을 내는 그런 식당이 아니라 고유의 정체성과 경양식의 전통을 보존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식당은 몹시도, 빼어나다. 맛있는 돈까스 덕분에 식사를 하는 동안 내 기분은 누그러졌고 여섯시간의 운전 동안에 뒤에서 외롭게 아이와 고군분투를 할 아내에게 내가 짜증을 부린 것도 미안해졌다. 


 끝이 좋으면, 뭐든 좋다고 할까. 올라오는 길은, 아내 덕분에, 훌륭한 돈까스를 먹었던 덕분인지 길도 막히지 않았고, 졸음운전을 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다만 대략 여섯 샷의 에스프레소를 위장에 때려넣으며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화장실에만 들렀다. 아이는 두시간여를 자고 네시간여를 놀았다. 집에 와서, 나는 다행히도 두시간은 디아블로4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한번의 휴일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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