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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23. 2023

좋은 문어는, 반드시 맛있게 먹어야 해

울진 수산시장에서 택배로 받았어용

 바깥양반의 친구인 도치씨와 작은아들, 그리고 우리 아기까지 다섯이서 지난 주말에 울진에 다녀왔다. 도치씨의 큰아들의 축구 리그 경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릉에서 도치씨와 아이를 픽업해 한시간 반 가량을 내려갔다. 오며 가며 운전을 한 수고를 도치씨는 대게와 다른 좋은 식사로 답례했고, 나는 일요일 아침에 는 펜션에서 바깥양반의 버킷리스트인 홍게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홍게라면은 바깥양반이 애정하시던 <어쩌다 사장> 1시즌에서 조인성이 끓이던 주력 메뉴. 


 그런데 홍게를 보러 간 울진 어시장 수조에, 문어들이 한가득 담겨있다. 


"오빠 우리 애 문어 먹어보게. 같이 나눠서 시킬래요? 수달(바깥양반)아- 문어 먹지?"

"응? 오- 그럽시다."


 문어는 비쌀 텐데. 그녀는 호기롭게 문어를 주문했고, 한 김에 홍게도 자신이 결재해버렸다. 에이 홍게는 내가 사려던 건데. 마침 동백이가 나에게 달라붙었다. 대신 나는 또 음날까지 나름 열성을 다해 일행의 편의를 보아주었다. 동백이는 모처럼 세살 위 오빠랑 만나서 신이 나서는 펜션에서 평소보다 훨씬 늦게까지 뛰며 놀았고 다음날 아침에도 화창한 날씨에 해수욕도 한시간 가량을 즐겼다. 6월 하순에 접어든 바다도 하늘도 청명하고 푸르기 그지없었다. 주고 받고 하다보면, 구구한 손익도 조금 사소해질 수 있다.


 그리고...마침내 왔다.


- 문어가 벌써 왔어요!

- 아들네미들은 잘 먹어요?

- 아뇨ㅠㅠ


 도치씨네 아이들은 유감스럽게도, 문어를 즐기진 않는 모양. 물론 우리 아기도 그렇다. 퍽 부드럽게 잘 삶아진 문어인데도, 잘게 잘라줘도 잠시 기미만 보신 뒤 스윽 혀로 밀어낸다. 에잉 이런. 


 그리고 나는, 이게 얼마야...대강 7,8만원은 족히 되지 싶은 묵직한 문어 반마리를 받아들고, 이걸 이제 어떻게 해야 잘 먹지 고뇌에 휩싸였다. 숙회니까 바로 초장? 

 유감이지만, 안될말이지. 아침에, 나는 장모님이 드실 숙회를 조금 썰어내놓고는, 오랜만에 버터와 양파, 마늘을 넣고 볶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집에서 문어 만들어 먹기의 첫 코스는 일단은 문어 리조또. 전발 밤, 토마토 소스를 사다놓고 생쌀을 물에 불려두었다. 

 신혼 때 리조또를 할 일이 제법 있었다. 음 그땐 뭐랄까, 김치 말곤 밑반찬 같은 것도 적을 때고, 둘이서 그냥 아침마다 간단하면서도 품위있게 이것저것 만들어먹던 시절이다. 그래서 나름은 밥이 아닌 생쌀로 리조또를 하는 정통파란 말씀. 


 다만 오늘은 토마토 소스 말고는 풍미를 낼만한 재료가 없다. 원래는 야채와 함께 베이컨이든 뭐든 드글드글 볶아서 좀 감칠맛을 내야 하는데 문어는 가볍게 데우는 것 이상의 재조리를 할 수는 없다. 연체동물의 무른 육질은 바로 질겨지고, 맛없어질 테니. 그리고 시간도 없다. 대신, 나름 정성껏 바깥양반의 식기엔 치즈까지 듬뿍 올려 오븐에 구운 뒤 토치로 피니시했다.


"오빠 맛있는데 너무 많아. 저녁 때 해주지."

"문어 아직 많아. 내일 또 다른 거 할 거야."

"응."

"맛있었냐."

"응."


 바깥양반은 만족하며 평소보다 훨씬 많은 아침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이번엔 올리브를 작은 냄비에 콸콸. 마침 딱, 감바스를 할 만큼의 아주 조금의 올리브유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코스트코 회원증 있는 친구에게 곧 달라붙어야겠다. 

 10분이면 감바스도 뚝딱이다. 칵테일새우와 흰다리새우를 약불에 보글보글 끓이는 사이 미리 빵집에서 한입 크기에 가깝도록 썰어달라고 한 바게트를 버터 약간에 구웠다. 문어는 감바스 냄비에 넣지 않았고, 먼저 접시에 감바스를 담은 뒤, 문어를 올리고, 냄비에 남은 감바스 기름을 한번 두르는 걸로 끝. 


 절대로 문어님을 덥게 해선 안돼. 따듯하게만 해야지. 


 그리고 그날 저녁에 홍게 한마리 남아있던 녀석을 끓여 다시 라면을 만들고 문어를 올렸다. 네번째 요리 홍게문어라면. 안타깝게도 게는 신선도 관리가 생명이라(뭐 거개의 해물이 다 그렇지만) 토요일에 사 화요일 저녁에 먹으려니 벌써 게살이 녹아 수율이 확 떨어져있었다. 생물 홍게는 그날 사서 그날 끓여먹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쩔 수 없다. 외지인이 거기까지 가서 생물을 사먹으려는 마음과, 그곳에서 맛집을 하나라도 더 가려는 마음은 이런 식으로 충돌한다. 다행히도 홍게라면은 충분한 감칠맛과 풍미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문어는, 어제의 감바스 기름으로 파스타를 만든다. 감바스를 두배로 활용하는 방법. 


 요 감바스 오일이야, 전전날의 리조또와는 달리 새우와 페퍼론치노 등, 풍미가 가득이다. 흰다리 새우를 손질하고 새우 머리 기름을 짜넣으니 더욱 고소하다. 원래는, 흰다리새우를 좀 더 썼더라면 좋았겠지. 그러나 올리브유가 조금 부족해서 흰다리새우 두마리도 겨우 들어간 상태였다. 


 뭐 같은 루틴의 반복. 문어를 자르고, 장모님 드실 숙회 조금, 우리와 장모님 다 함께 먹을 문어 넉넉. 파스타를 먼저 강불에 휘리릭 오일을 코팅한 뒤, 마지막으로 문어를 올려 잠시만 볶듯 팬 위에 파스타를 돌린다. 아이가 먹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통후추는 못참지. 


 이렇게 네번의 요리로 문어는 반마리, 2kg 넘는 아이가 모두 소진됐다. 

 워낙에 초딩 입맛인 바깥양반을 모시고 사느라 나는 상당한 고민을 치른다. 그 많은 문어를 매 끼니마다 숙회로만 차려주면, 안먹는다. 진짜로. 깨작깨작 문어를 깨물어먹다가 김을 꺼내고 말겠지. 나는 그런 절박함으로 문어 밥상들을 차렸다. 


 그리고 이런 소동 역시도 좋은 식재료가 모처럼 들어와서 가능한 것이다. 바깥양반의 친구 도치씨가 비싼 값을 치러준 덕분에 오래간만에 요리에 풀컨티션을 발휘했다. 이 모든 노력은, 음식에 대한 존중과 예우랄까. 귀한 음식은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내가 보충수업을 하느라 늦게 간 월요일, 바깥양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오빠 문어 왔는데, 냉동실에 넣어?

- 아니!!!!!


 하마트면, 시작도 못하고 빠이빠이할뻔 했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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