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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26. 2023

새끼 제비 구조했으므로 박 심을 땅 보러 간다

다리는 절대 못고쳐요

"동백아 제비다 제비."

"와 제비다 동백아아."


 강화도의 한옥펜션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봄 손님 제비였다. 그리 높지 않은 처마 아래 둥지를 튼 제비는 다섯 남매가 짹짹 부산하게 몸을 움직였고, 문 앞의 좁은 마루자락엔 제비가 싼 똥을 받치기 위한 나무 쟁반이 놓여있다.


"여기로 다녀야하는데. 똥 조심해."

"응- 악-! 동백아! 그거 지지야!"


 아니나 달라. 짐을 한창 집 안에 나르고 있는데 아기가, 바로 자기 배꼽 높이의, 만지기 딱 좋은 위치에, 너무나 잘 뿌려져 있는, 그 제비똥을, 두 손으로 철퍽. 마침 마당에 수도가 있어서 바로 데리고 가 손을 씻는다. 지하수를 끌어쓰는듯한 마당의 수도는 한참을 물을 틀어도 뜨끈뜨끈 온수물이 나왔다.


 곳곳의 나무기둥에 썩고 삭은 흔적이 보이는 한옥펜션의 작은 안마당은 아이가 놀기 좋았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가 에어컨을 틀고 짐을 푼 뒤 마당에 아이를 풀어 다시 놀렸다. 이제 말을 제법 알아듣는 아이는 제비똥을 다시 만지지 않았다. 제법, 말을 알아듣는다. 이제는 혼을 내면 고개를 숙이며 딴청을 피우고 세글자 단위로 반복 발화를 한다. 


 아이를 먹이려면 미리감치 저녁 준비를 해야하기에, 나는 다섯시가 되자 밥을 차리기 위해 움직였다. 다락 아래 놓인 낮은 부엌은 나로 하여금 내내 고개를 숙이고 주방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아궁이가 있었더라면 이 자리보다는 훨씬 낮았을 위치였을 터인데, 아궁이를 막고 부엌을 메워 마당과 높이를 맞추었으니 나같은 사람은 내내 목이 아프다. 그 아픈 목으로 감자를 닦고 썰고 쌀을 씻어 안치고 김치를 썰어내고 상추를 썰고 등등등...


"악! 마누라아!! 빨리 나와!!"


 그리고, 숯불을 피우러 주방을 나왔는데, 사건이 터졌다. 

"뭐? 왜애?"

"아 빨리! 큰일났어 큰일!"


 새끼제비가, 둥지에서 2.5m는 족히 되는 아래로 추락해 있었다. 좁은 둥지에 다섯이나 모여있더라니. 이제 날기 위해 털갈이를 하는 솜털뭉지들이, 그만 한마리가 떨어진 것이다. 


"어어? 어떡해-!"


 아내, 아니 바깥양반은 제비를 보더니 자기도 놀라 소리를 지른다. 나는 제비를 당장 구해야겠기에 우선 부엌에 가서 고무장갑을 꼈다. 그러나 제비는, 작아도 너무 작다.


"아 어떡해. 내가 쥐면 얘 뼈 부러질 것 같아."

"어떡해 오빠 빨리 구해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쳤단 건 거짓말이야. 어린 아이 손가락 두개 크기 밖에 안되는 작은 제비 아기가 바들바들 떨고 나무쟁반을 들고 있는 내 손길처럼 바들바들 고개를 든다. 안다쳤을까? 어딜 집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집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어어어어. 어떡해-."

"엄마 아빠 다 왔다."


 그제야 부모 제비가 변고를 알고 찾아왔다. 사람 머리 높이까지, 최대한 낮은 고도로 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다. 


"으아아아 애들아 기다려 기다려-."


 으아. 으아. 으아. 어딜 집지. 어떻게 하지.


 좁은 처마 밑 마루에 의자를 올렸다가, 오른손으로 제비 둥지에 올릴 각도가 안나와 반대 방향으로 의자를 다시 위치시켰다. 다시 의자에 올라간 뒤, 쟁반을 기울여 오른손에 제비를 살며시 담았다. 조금이라도 제비가 내 손 힘에 상하지 않도록.


"으어어어어- 으아아-."


 들어갔나. 나무 기둥과 둥지 아래 받침대 때문에 둥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나무받침이 있었는데도 그 아래로 떨어졌단 말이냐 이녀석. 잘못 힘을 줬다간 둥지도 위험하니 최대한 살며시...살며시...


"됐다."


 나는 신속히 의자에서 내려와 둥지를 보았다. 휴. 하며 숨이 탁 풀리고 둥지 위의 다른 형제 자매들 역시 안전함을 확인한다.


"안다쳤을까? 아 죽지 말아라 제발."


 아까는 다섯. 지금은 넷. 아직은 넷이다. 내가 의자까지 치우고 멀리서 둥지를 조망하려 하자, 제비 부부는 둥지로 올라가 새끼들을 챙긴다. 그녀석들, 집 좀 크게 높이 지을 것이지.


 잠시 더 기색을 본 뒤 나는 마음을 놓고 돌아섰다. 드문 드문, 떨어졌던 아이의 노란 부리가 보인다. 잠시 뒤엔 기운을 좀 차렸는지 다섯개의 부리가 모두 둥지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다.


"...와아. 진짜 놀랐어."

"와-흐. 한옥숙박 하길 잘했네. 그치-동백아-."

"아휴...박...씨 심으러 가야하나."

"그래- 좋은 소식 물어다 줘라 제비야."

"으으-."


 나는 아이와 함께 제비 둥지를 바라본다. 처음 새 둥지를 구경한 아기는 제비가 좋은지 나에게 목마를 태워달라며, 자기도 제비 둥지를 구경하겠다고 보챈다. 나는 다시 처마 밑에 올라가 아이를 목마태운다.


"우으-."

"으응. 동백아. 제비. 짹짹."

"째찌!"


 나는 숙박에 오기 하루 전 금요일에, 몹시 좋은 연락을 하나 받았다. 그리고 그 좋은 연락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하나 겪었다. 인생에 쉬운 것도 없고 거저 오는 것도 없고, 그저 하루 하루의, 이런 공덕, 이런 우연들. 


 제비를 구했고 아이는 다음날 아침에도 다행히 살아있다. 제비 부부는 부지런히, 늦은밤에도 다음날 새벽에도 아이를 먹었다. 우리는 초여름의 제비와의 만남에, 다가올 가을의 결실을 기원하며 집을 나섰다. 박...심을 땅. 친가인 대전까지 가야하나 외가인 태안가지 가야하나...박 심을 땅, 보러가야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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