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Jul 05. 2023

그래도 김밥 좋아하시죠?

오는정 서타일

"오빠, 도치가 김밥 되냐는데."

"김밥?"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풀 시설을 갖춘 캠핑장에 놀러가기로 하였고, 와이프 친구인 도치씨는 캠핑장 예약비용을 부담했다.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뜬금없이 도치씨는 김밥을 얘기했다. 


 허어 김밥이라. 요즘 좀 안해주기도 했어. 여타의 메뉴에 비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엉과 단무지는 손질 된 걸 사면 되고 시금치나물 정도만 미리 준비해서 수분만 잘 날리면 되지. 다만, 


"나 그럼 그날 결혼식은? 다녀오면 빨라야 1시나 될 텐데."

"그럼 빨리 싸서 가자."


 나는 양재에 결혼식이 있었다. 그런고로, 일정이 조금 빡세다. 오전에 양재 다녀와서 김밥을 싸서 나들이 가기. 


 그러나, 당연히도 생각은 그리 만만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았으니, 내가 결혼식에서 돌아와서 2시에나 김밥을 싸서 가면, 점심 끼니로는 너무 늦다. 사내 아이 둘 먹이고 수영장에서 놀려면, 한 입으로도 든든한 김밥을, 수시로 먹여야 한다. 그런고로 나는 김밥을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예식장에 가기 전에 먼저 김밥을 만든다. 밑작업은 금요일 밤에 미리 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시간이 타이트한 와중에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은, 김밥을 제대로,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오는정김밥 스타일로 간다!

 금요일 밤에 아이를 재우고 나서 김밥 밑작업이 시작되었다. 유부를 꽈아악 짜서 수분을 빼낸 다음 채쳐서 볶는다. 그리고 소시지도 최대한 잘게 다져서 볶는다. 이 두가지 재료가 오는정김밥의 비법이라는데, 함부로 따라하면 안되는 것이, 유부와 소시지를 볶느라 쓴 기름들이 밥에 섞이면 김밥이 질척거릴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전날 미리 볶아놓고 밤 사이에 수분을 날리기로 했다. 


 철저한 준비력.

 레시피를 참조해서 부추도 데치고 맛살도 기름 자작하게 볶는다. 오뎅도 숭덩숭덩 썰어서 간장과 함께 볶는다. 우리 3살 아이와 더불어 6살, 9살 아이를 함께 데리고 놀 예정이다. 그리고 6살과 9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김밥을 만들기 위해서 맛살을 반으로 쪼개서 준비하는 등의 조치를 일단 해두었다. 


 나는 김밥을 잘 싸지 못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성공이라고 할만큼 만족스럽게 만들지 못했다. 늘 여러가지 부족한 점들로 인해, 제대로 맛있게 만들었다고 할만한 김밥은 없었다. 그러나 내일은 평가자가 더 많다. 주문도 조금 일찍 이루어졌다. 


 내일은 잘 만들어야지. 모처럼 이렇게 밑작업까지 성실하게 전날밤부터 미리 하지 않았느냐. 밑작업이 끝난 재료들이 수분이 날아가도록 펼쳐두고는 우선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김밥을 싸기 시작해야 한다. 

 아침. 나는 일어나서 아이랑 잠시 놀아주다가 8시에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먼저 지단 슉슉 만들었다. 요즘은 아무래도 김밥집들에서도 지단이 좀 두껍게 들어가는 추세다. 나도 좀 두껍게 만들다보니 어라...계란 세개론 지단이 부족할 것 같다. 두개를 더해 지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분과 유분이 적당히 날아간 유부와 소시지를, 유부초밥에 딸려온 양념거리들을 추가하여 아침에 새로 한 밥과 함께 섞는다. 


 밥은 일부러 아침에 씻어 앉혔다. 김밥이든 어떤 밥이든, 결국 쌀의 싱싱함과 탱글함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침 최근에 새로 산 쌀이기도 하고.


 이 엄청난 디테일.

 첫 김밥을, 바깥양반에게 싸서 바로 썰어내 주었다. 아이와 놀아주고 있던 바깥양반은 김밥을 먹고는 조금 싸다는 답을 내놓는다. 쯥. 일부러 공들여 오는정김밥으로 만들어줬건만. 리액션 심심해.


 나는 이번에 김밥을 싸면서 확실하게 몇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김 위에 밥을 최대한 얇고 넓게 펴야 한다는 점. 그래야 밥이 속재료들을 완전히 둘러싸게 되고, 그 결과로써 김이 속재료에 직접 닿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김밥이 터지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이 단순한 사실을 제대로 몰라서 김밥을 번번히 실패하곤 했다.


 또 다른 깨달음은, 김밥을 싸면서 최대한 딴딴하게 쥐어서 눌러줘야 한다는 것인데, 야 이거 어렵다. 김밥은 아무리 맛있고 좋아해도 집에서 자주 해먹을 음식이 아니다보니 나는 김밥을 싸는 요령 자체가 아직은 없다.

발로 감싸서 중간에 어떻게, 어떻게 힘을 줘서 꽉 쥐어야, 김밥이 단단하게 싸질까. 어렵다. 어려워.


 아, 원래 나는 김밥 꼬다리를 좋아하는데, 직접 김밥을 많이 싸게 되니 자연스럽게...꼬다리가 싫어졌다.

 여러가지 버전으로 김밥을 싸면서 한 8줄 정도 만들었나. 아이들 먹을 김밥은 속재료도 되도록 조금씩 싸고 단무지를 뺐다. 어른들 먹을 김밥은 무난히 넉넉히 넣었다. 제일 어려운 건, 김밥이 터지지 않도록 썰어내는 것. 두구두구. 


 나는 김밥 초보이기 때문에, 김밥을 얇게 전문가적으로 썰진 못한다. 아직 겁이 난다. 그래서 1센티씩은 넘도록 좀 두툼하게 썰었다. 그랬더니 김밥을 시식한 도치씨는 오빠 김밥이 조금 두껍다는 평을 남겼다. 맞아. 여섯살 아이가 먹기엔 두껍다. 그리고 여섯살 아이가 먹기에 좋을만큼 충분히 재료를 줄이지도 못했다. 아직 서툴긴 하지만 김밥을 모두 준비해놓고 서둘러 씻고 예식장에 다녀왔다. 


 오후에 캠핑장 나들이를 하는 동안 나는 21개월 아기 한명과 함께 수영장에서 놀아주는 것에조차 온몸을 내던져가며 체력을 소진해야 함을 깨달았고, 그럼에도, 김밥은, 내가 바라던대로 중간중간 한 입거리만으로도 아이를 다시 돌볼 에너지를 주기 충분했다. 


 다음엔, 더 잘 싸야지. 다음엔, 더 얇게 썰어야지. 이렇게 전날밤부터 왁자하게 판을 벌리고 나서,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캠핑장에서 도치씨네와 헤어지며, 나는, 그래도 김밥을 다시 만들 날을 기약하고 있다. 힘들어도 번거로워도 김밥이란 더 먹고 싶고 더 만들고 싶은, 그런 것인지라. 

매거진의 이전글 새끼 제비 구조했으므로 박 심을 땅 보러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