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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01. 2023

흑흑 맛있었다 오늘의 꽃게는

다리 빠진 숫꽃게 키로에 단돈 만칠천원!

"숫꽃게 얼마씩 해요?"

"만칠천원."

"이잉?"

"이쪽은 이만원, 아래가 삼만원."

"아니 이쪽은 왜 이렇게 싸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가격에, 소래포구 재래시장 초입의 상인 아주머니는 길가에 버킷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비오니까 빨리 팔고 갈라고 하지. 저기 바께스 봐요 오늘 아침에 가져온 거예요 다."


 이건 그럴만도. 부처님오신날 연휴 내내 비가 온다고 하니, 재래시장 상인들과는 상극이다. 그런데다 만칠천원짜리 꽃게를 힐끗 보니 다리가 빠진 아이들에, 생기도 없어보였다. 이런 애들을 뭐라고 하더라. 하여튼 상품가치가 떨어지니, 가뜩이나 봄철 알배기 암꽃게에 비해 값이 싼 숫꽃게에, 비까지 와서 운 좋게도 이런 가격이 형성된듯하다.


 아무리 생기가 떨어져보여도 냉동도 아니고 꽃게에 있어서 앞다리 말고는 다리 몇개 빠진 건 중헌 하자가 아니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개중에, 몇개 살아있는듯 꿈틀거리는 이 키로에 만칠천원짜리 꽃게를 골랐다.


"2키로 주세요!"



 나에게 꽃게 요리는 이번에 생애 두번째다. 결혼 초기 겨울에 바깥양반과 태안에 놀러갔다가 그래도 태안까지 왔으니 하며 태안 시장에 들러서 냉동 꽃게 1키로를 사와, 처가집에서 쪄서 장인 장모와 노나먹은 일이 있다. 냉동이다보니 찔 때 육즙이 좀 빠지긴 했다만, 맛만은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 아기가 놀만한 루프탑 수영장이 있다는 호텔에서 하루 우중 호캉스를 즐기고 아침에 소래포구를 떠나는 길에 시장을 들른 것이다. 바깥양반은 "그래도 시장 구경 좀 할까?"하는 나의 말에,


"엄마도 꽃게 좋아하니까 꽃게 사가자. 꽃게탕 해줘."


라고 대답했고, 나는 마뜩찮게


"그래. 아기는 먹이지 말고. 미세플라스틱 안되니까."


라고 답했다.


 내가 꽃게를 사서 요리를 할 일이 없는 건, 전적으로 엄마의 탓이다. 엄마가 연에 두세번은 태안을 가시니, 그때마다 게장이든 냉동꽃게든 활꽃게든 사오시곤 하는 것이다. 또 어린 시절엔 가족 모두 태안에 가서 자주 놀았으니, 그때도 거기 가서 먹었으면 먹었지, 다 크고 나선 내가 집에서 꽃게를 찌거나 끓일 일은 없다.


 근래엔 엄마가 태안을 다녀오시면 꼭 꽃게를 사오셔서, 며느리가 꽃게탕을 워낙 좋아하니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몸으로 꽃게탕을 끓여, 날 불러서 가져가라고 하는 추세다. 어쨌든 이러다보니 나에게 꽃게요리는 그냥 손 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 되었다. 꽃게를 보는 것도, 끓이는 것도 엄마가 전문이니 말이다. 게다가 바깥양반은 그 시어머니의 꽃게탕을 아주 코를 빠트리고 먹는다.

 하여, 집에 와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운 뒤 밤 늦게야 포장 상자를 뜯는 나의 마음은 두근두근 쿵쿵. 꽃게 요리에 있어서 첫번째 관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꽃게를 장을 잘 봐왔는가?


 일단 뚜껑을 열어보니, 야 다시봐도, 크다. 이정도면 중대급 크기다. 나는 꽃게를 꺼내서 도마에 올리고 숟가락과 비교해봤다.

"어이 바깥양반. 이거 봐라."

"응."

"크지?"

"응."

"이거면, 꽃게탕집에서 마리에 4만원씩은 팔아. 다섯마리에 3만4천원 줬으니까, 아까 아줌마가 그러더라고 돈벌어가는 거라고."

"으응."


 그러나 아직은 모른다. 내가 돈을 벌어온 것인가? 이 꽃게, 알은 가득 차 있는가?

 그리고 등딱지를 까보니, 야. 일단은, 절반의 성공.


 실패한 부분은 아가미에 뭔가 기생충 같은게 끼어있다. 그리고 선도가 조금 떨어져, 살 안쪽이 살짝 맛이 간 것도 보이고, 게껍질도 깔끔하지 못하다. 손질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가미는 어차피 먹지 않을 부위이고 손질을 하면 충분히 걷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린내도 심하지 않고, 이정도면 싸게 잘 사왔다. 돈을 벌어왔는지는, 등딱지 살을 걷어내보면 안다. 게 딱지살이 쫀쫀하면 잘 산 것이고, 흐물흐물하면 잘못 산 것인데...


 오. 괜찮아.

 나는, 약 30분에 걸쳐 이제 꽃게를 손질했다. 아가미를 싹 걷어내고 솔로 껍질을 최대한 닦았다. 그리고 등딱지는 모두 살만 걷어내고 버렸다. 그리고 몸통은 반절을 다시 세조각씩은 냈다. 나에 비해 형편없는 게살 바르기 실력을 가진 바깥양반, 아니, 사실 네이티브 태안인의 꽃게살 바르기 능력을 따를 도시민 따윈 없지만, 애니웨이, 바깥양반도 그럭저럭 살을 발라먹기 편하게 만들어놓았다.


 아가미에 있던 기생충은 정확히는 기생생물인데, 초 미니 따개비와 같은 녀석이다. 인체에 전혀 무해하고 신선도와도 무관하다. 그냥, 가격을 낮춘 또 하나의 요인이 된듯하다. 보기엔 혐오스럽다. 이걸 견디고 손질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이것이 꽃게의 두번째 관문인 손질하기인데, 어릴 때 엄마가 산 꽃게를 손질하다가 집게발에 집힌 적도 몇번 있다. 다 큰 내가, 다 죽어가는 꽃게들을 상대하려니 그럴 걱정은 없다. 그나저나, 식당에서 해물라면 같은 것에 들어가는 집게말은 씨알도 별로고 맛도 없는데, 이렇게 살이 꽉 찬 집게발은 발라먹는 것이 참 즐겁다. 집게발도 가위로 미리 쪼개서 넣어, 나중에 쓱 빠지게 만들어놓는다.


 무 한주먹, 애호박 하나를 다 넣은 국물은 게를 손질할 동안에 이미 팔팔 끓었고 나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하여 손질한 게를 풍덩풍덩 냄비에 넣는다. 금새, 희뿌연하게 육수가 만들어지고 게가 끓으면서는 거품이 솟는다. 그 거품 안에는 게의 진미도 감춰져있을 테지만 아무래도 바다생물이라 각종 노폐물이 담겨있을 것이라, 바지런하게 국자와 수저를 놀려 거품을 걷어낸다.


 이쯤이면 3단계인 탕 끓이기도 절반은 되었다. 나는 레시피 따윈 알지 못하고 대강의 지식으로 엄마가 쑨 집된장을 물에 잘 풀어서 넣었다. 그리고 마늘은 넉넉히. 중대 사이즈 꽃게가 다섯마리나 들어가니 아무래도 마늘도 된장도 넉넉해야겠지. 그리고 고춧가루로 마무리했다. 국물을 먹어보니, 흠 괜찮아.


 그러나,

"어 아냐 오빠 이거- 어머니꺼처럼 해야지-."

"읭?"


 바깥양반은, 한 국자 뜨자마자 나에게 면박을! 아니, 꽃게 삼관문을 모두 넘긴 나에게!?


"어머니 꽃게탕이랑 맛이 다르잖아-."

"음...잠깐만."


 나는 막 앉아서 밥을 한 술 뜨려다 말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어 어제 인천 갔다가 숫꽃게 사왔는데, 맛이 영 심심하네?"

"그래? 지금 맛이 없을 수가 없는데."


 나는, 내가 꽃게를 잘 사온 것인지부터가 자신이 없어서 엄마에게 1관문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지금 맛이 없을 수는 없다는 의견을 주셨고, 그래서 다음 질문.


"응. 꽃게탕 어떻게 양념하지? 일단 엄마 된장만 풀었어 고춧가루랑."

"아니. 고춧가루가 아니라 고추장."

"응? 고추장?"

"어. 고추장이 넉넉히 들어가고 된장이 조금 들어가."

"아...나는 된장으로 간 하고 고춧가루만 조금 넣었지."

"어 거꾸로 했네."

"아하..."


 나는 엄마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통화를 마쳤다. 고추장. 고추장이 열쇠였구나. 꽃게탕을 다시 냄비에 담고, 고춧가루를 넉넉~히. 꽃게 다섯마리 양만큼 넉넉히 물에 풀었다. 그래서 색을 보아가며 반절 정도, 그리고 다시 색을 보아가며 남은 고추장물의 반절을 다시 넣었다. 그리고, 신중히 지켜본다.

 딱, 바로 이 색. 바로 이 색이야 바깥양반! 하며, 나는 간을 보았고, 으음. 괜찮아. 이정도면 비근하다고 할 수 있어.


 고추장의 양념이 확실히 배어들도록, 그리고 추가로 넣은 애호박이 푹 익도록 한동안 팔팔 끓인다. 그 사이에, 부들부들하던 꽃게 살이 국물에 절여지며 탄력을 잃겠지만, 괜찮아. 그정도는, 처음 만들어보는 꽃게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양해할 수 있는 수준의 손실이야. 이미 돈도 벌어온 거니까 이 꽃게는.


 꽃게탕이 다시 끓었다. 나는 그릇에 퍼서, 바깥양반께 올렸다.


"아 그래 이거지. 이 맛이야."


 바깥양반은 말씀하셨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네번째 관문까지 통과한 것일까. 흑흑 맛있었다 오늘의 꽃게는.


부록. 작년에 암꽃게 게미지게 먹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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