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복숭아는 맛있지.
"난 딱딱한 복숭아 싫어. 물렁이가 달아."
"흐음...아니 뭐...그건 이해는 하지만-..."
여름엔, 아무래도 복숭아다. 늘 비싸지만, 늘 맛있어서 금쪽같은 월급을 쪼개어서라도, 먹지 않을 수 없는 그것. 혼자 장을 보다가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자두도 사고, 붉은 자두도 사고, 복숭아도 샀다. 백도 중에서 분홍빛이 잘 든 놈들을 골라, 크기가 큰 놈으로 넷을 골라서.
그런데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뒤 아이와 바깥양반에게 썰어주었더니, 아이는 아이대로 몇 점 안먹고 의자에서 내려와버린다. 바깥양반께서는, 글쎄 복숭아를 한 조각 먹더니, 바로, 자기는 물렁한 복숭아, a.k.a. 물복이 좋다며 시무룩하게 말한다.
딱복 중에서도 아삭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읭? 하며 두 사람이 먹다 남긴 복숭아를 거의 혼자 먹었다. 배가 부르다. 지난번에 황도를 사서는 다 같이 잘 먹더니, 내가 잘 먹는 딱딱한 복숭아, 줄여서 딱복만은 같이 먹어주질 않으니 그건 내가 시무룩.
"아니 뭐, 황도가 값도 더 싸고 한데...그래도 복숭아는 백도지."
"애도 안먹잖아 안달다구."
"그럼 뭐...자두 꺼내줄까?"
"응."
나는 냉장고에서 자두를 꺼내 이번엔 바깥양반이 드실 몫을 닦아냈다. 혹시 아이도 먹을까 슥슥, 칼로 자두를 벗겨 썰어낸다. 자두가 아주 실하니 싱싱해서 탱탱, 원래 물러서 칼질하기 어려운 과일인데, 이 놈은 칼이 잘 든다.
그러나,
"어 이것도 자두가 딱딱한데? 그리고 안달아. 시어."
"악...아니."
이 자두는 내가 하나를 먼저 먹어보았다. 시원하고 향긋한게, 정말 맛난 자두다. 그러나 바깥양반은 자두 역시도 물렁하니 물이 촉촉하고, 달달구리한 자두를 좋아하는 것이었다. 결혼한지 6년이 넘어가는데, 아내의 취향을 이렇게 늦게도 깨닫는다.
"일단 복숭아든 자두든, 오래 두면 알아서 물렁해지고 달아져."
"물렁한 걸 사러 가자."
"으응 내 말 뜻은, 딱복이랑 딱자가 더 싱싱한 거고, 물복 물자는 싱싱하지 않은 거란 거지."
"황도는 안그런데."
"아 그건..."
새초롬한 언변이다. 나는 값비싼 백도와 자두를 산 것을 후회했다. 내가 혼자 먹을 일도 아니고 어차피 바깥양반과 아이가 먹을 것이니,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는 것이 지당한 일. 굳이, 집에서 과일을 많이 먹지도 않는 내 취향이 반영될 일도 아니긴 했다. 다만, 나는 그런 욕심이라기보단 단지 아내나 아이의 입맛에 대해 무지했고 선의로 크고 실한 자두와 복숭아를 샀다.
딱딱한 복숭아는 달지 않아도 향긋함이 좋다. 입안 가득, 그 아삭한 과일의 입자가 바스러지면서 밍밍한 달달함이 입안을 채우고, 이내 식도에서 기도로, 코로 넘어오는듯한 복숭아의 향. 냉장고에서 갓 꺼낸 복숭아 하나를,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서 먹으면 더위도 견딜만한 시간이 된다. 물렁한 복숭아는? 그것도 그것대로 좋다. 상큼함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촉촉함으로, 한 입 배어물었을 때 입 안 가득히 퍼지는 과즙. 시원한 복숭아일수록 물렁한 복숭아의 과즙이 목을 넘어가는 쾌감도 각별하다.
아마도 바깥양반께서는 그런 식도락의 쾌감으로 물복과 물자를 즐기시는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도 그렇다. 나는 그 다음번 다시 장을 보러 가선 황도 한 팩을 샀다. 음 괜찮은 크기가, 여섯 알에 8천원. 장마와 폭우로 인해 요즘 나오는 과일의 당도는 아쉽고 가격은 비싸다. 수박도, 복숭아도, 하나 하나 입에 넘기기 부담스러운 시절이다.
하나하나의 과일에 신중히 모두가 즐겁게. 또, 남기지 않고 싹싹 먹을 수 있도록 관리하기. 이런 것이 여름, 비싼 과일을 앞두고 느끼는 교훈이다. 아 물론, 복숭아와 자두는 딱복을 사서 한 일주일, 열흘, 냉장고에 잘 숙성시키면 아주 물렁물렁하니 맛이 있어지니, 이것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복숭아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고도 다음엔 딱복도 사고 물복도 사서, 각기 물복, 딱복을 먹다가, 딱복이 물러질 때쯤 또 같이 즐기면, 이 어찌 여름의 소소한, 아니 복숭아는 사치과일이긴 하지만, 그런 행복 아닐까. 오늘 저녁엔 또 열심히 과일을 썰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