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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09. 2023

초면에 죄송하지만 파김치 사랑합니다

이야 푹 익은 파김치

"남은 양념으로 굴김치는 잘 해서 먹고 파김치도 만들었는데 그건 영 맛이 없네."

"이제 만들었으면 못먹지. 파김치는 푹 익어야 맛이 좋지."


 지난해 김장철을 조금 지나서 나는 엄마에게 파김치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약 10 포기 정도 담을 분량의 김치양념이, 김장의 결과 남았다. 엄마는 다짜고짜 그걸 나에게 넘겼다. 알아서 해먹으라며. 그래서 나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걸 가지고 굴김치도 만들고 깍두기도 만들고 파김치도 만들었다. 


 굴김치는 무려 한번 더 리필까지 해 가며 세 부부의 동반모임 때까지 잘 해먹었고 깍두기도 바깥양반이 입에 맞아했다. 다만 자주 꺼내먹질 않다보니 쉬어서, 나중엔 물러진 깍두기를 먹진 않고 버리게 되었다. 흐음. 그리고 세번째로 만들어진 파김치. 파김치가 문제인데, 내가 아무리 파김치를 사랑하더라도 그것이 익기까지는 마치 모란이 피길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찬란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갓 액젓에 절였다가 양념에 절인 파김치는 파의 향이 너무 진하기만 하고 맛은 들질 않아서, 생 쪽파를 그저 고추양념에 무쳐서 먹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그러길 한달, 두달, 그러다가 엄마가 새 김치를 또 보내주시고, 여름이 되니 열무김치를 심심하면 내게 건내시고, 마침 김장김치도 알맞게 익어 맛있고, 그래서 파김치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갈 무렵, 나는 어느날 김치냉장고를 정리하다가 그간 열어두지 않던 통을 꺼냈고, 내용물이야 말할 것도 없이 언제쯤인가의 김치려니 싶었는데 꺼내보니 호모나 세상에 이런 내가 만든 파김치로구나. 어와 너여이고 반갑고나 파김치.


 하여 나는 그 파김치를 맛있게 먹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을 하였는데 사실 집에서 한단으로 겨우 만든거라 양이 많지도 않다. 그걸 가지고 알뜰살뜰 먹어야하는데 어떻게 하면 가장 맛있냐, 생각은 했지만 서도 일단은 삼겹살 기름에 구우면 그보다 맛있는게 어딨단 말인지. 그래서, 일단은 넓적한 그리들에, 삼겹살을 굽고, 가운데 기름을 모아모아, 그걸로 파김치를 볶고 굽는다. 


 햐, 이 맛이다. 10개월 가량 푸욱 익은 파김치가, 돼지 기름에 볶아지는 향과 맛.

 그 다음으로 내가 한 일은 열무김치 반, 파김치를 반 해서 꽁치 통조림과 함께 김치찌개를 끓인 일이다. 파김치 이상으로 곰삭은 열무김치가 있어, 그 통도 마무리할겸 꺼내기 좋았다. 열무김치를 푹 끓여서 지져놓으면 그 자체로 감칠맛 넘치는 시래기 비슷한 맛을 내어주니, 시큼하고 시원한 국물이, 꽁치통조림과 어우러져 무엇보다도 좋은 음식이 되지. 


 파김치+열무김치의 꽁치 지짐은 두끼만에 모두 해치웠다. 꽁치 통조림 하나의 양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바깥양반과 내가 먹는 한 끼니 밥상이라 그리 많이 할 양은 아니었다. 그러나, 꽁치 지짐까지 해먹고 나는 아직 갈증을 느꼈다. 파김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이걸 어떻게 해야 가장 맛있게 이별을 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간 것이다. 


 삼겹살에 또 볶아도, 라면을 끓여도 맛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손쉽게 파김치를 보내고 싶진 않았다. 파김치도 맛있고, 함께 궁합을 이룰 음식도 맛있을 수 있을, 그런 요리를 해보길 나는 바랐다. 마침, 그런 와중에 생물고등어를 값싸게 사 들여온 일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일단은 김치냉장고에 살짝 얼려서 보관해두었다. 살짝 선동된 상태로, 손질만 해서 바로 조리해먹을 수 있게. 


 그래 그것은...파김치로 고등어 지짐을 하기로. 생물 고등어라면, 그것을 파김치와 함께 지져먹는다면, 그것으로 가장 아름답고 파김치의 품격에 걸맞는 이별이 될 수 있겠지. 

처음에 고등어를 손질할 땐 멘탈이 넘어가는 경험이었는데, 몇번 해보고 나니 이젠 어렵지도 않다. 나는 여유롭게 송혜교의 더 글로리 요약편집본을 보며 스슥삭삭 고등어를 손질했다. 살짝만 익은 상태라 칼은 아주 쉽게 들어갔다. 미리 밀가루를 묻혀 벅벅 씻어내, 기름기를 벗겨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등어를 네 토막으로 자르고, 남은 파김치와, 파김치 국물을 모두 냄비에 부었다. 그리고 다시다를 적당~히 넣었다. 너무 짤까봐 물도 약간. 그럼 이내 냄비가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는데, 붉은 고등어 살이 하얗게 익어올라오는 것을 보며 남는 것은 언제쯤 이것을 꺼낼까다. 


 너무 익으면, 이미 한번 얼려졌던 고등어의 살이 더욱 퍼석해질 공산이 크다. 어느 정도는 그 살의 윤기를 고이 간직한 채로 상에 올리고싶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불을 끄면, 고등어의 감칠맛과 파김치의 깊은 맛이 어우러질만큼 조리되지 않는다. 또 국물이 너무 싱겁다. 


 살짝, 맛을 보니 국물은 푹 익은 김치의 향으로 시원하고, 1년간 묵어진 쪽파의 향은 그윽하고, 거기에 고등어의 기름진 고소함이라. 맛이 좋다. 나는, 일요일 아침의 첫 끼니인 탓에 오래 망설이지 않고 불을 껐다. 햄을 좀 같이 구웠고, 밥은 새로 지은 팥밥이다. 

"이거 뭐야?"

"고등어."

 

 식탁에 앉으면서는 생소한 음식에 뭔지 묻던 바깥양반도 막상 한점 먹은 뒤엔 햄보다도 고등어를 마구 먹는다. 생물이라 맛이 좋지 않을 수가 없지. 요즘 또 쌀밥 거부 중이신 따님께서는 식사를 거부. 그러나, 나는 접시에 담긴 파김치를 거의 모두 독식했다. 그리고 그릇에 담긴 국물도 거의 남김 없이 모두 먹었다. 파김치에 대한 정당한 예우, 적절한 인사. 


 최근 바깥양반은 김장이 언제냐 내게 물었고 그것은 우리 앞에 약 한달 반 가량이 남아있다. 올해 김장은 또 어떨지. 세상 누구보다 지금 호기심이 많고 사고의 스케일도 하루가 멀고 더욱 커지고 있는 우리 따님은, 올해 김장엔 어떻게 대처할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시점. 그러나 그런 복작복작 소동과 요란함 속에 이렇게 파김치와의 재회도, 아름다운 이별도 이루어진다. 게다가 내가 처음으로 홀로 만들어본 김치인지라(물론 양념은 김장을 할 때 엄마가 거의 하신 것이지만) 더욱 이번 파김치 요리에 정이 간다. 


 뭐 딱히 내가 한 것이라서는 아니지만 이것은 파김치에 대한 수줍은 고백이랄까. 우리의 짧은 생애에 파김치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 이 글을 읽는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파김치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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