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할거야?
- 허리에 감긴 천 조각에서 공주님 드레스의 불길한 전조를 느끼는 아빠입니다ㅋㅋ
- 우리 동백이가 요즈음 예쁘고 화려한 것에 관심이 많거든요. 스카프를 요기에 해달라며 스스로 요청했답니다.^^
오
마이
까뜨.
올 것이, 다가오고 있다. 자의식이 생기고 성별에 대한 인지를 하더니 드디어...드디어...허리에 치마를 둘렀다. 아이의 어린이집 알림장 사진에서 나는 불현듯 찾아오는 그...공주님, 감히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그 의상에 대한 불길한 조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여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하...이런. 올 것이 오고 있구나.
아이의 성징이 나타나는 것은 재미난 일이다. 아빠 껌딱지였던 녀석이 엄마하고만 갖는 순간들이 생기고, 엄마를 찾을 때가 늘었다가, 또 아빠를 찾는다. 로션을 볼에 초록초록 바르는 앙증맞은 작은 손. 화장품 장난감을 꺼내달라고 하더니 엄마처럼 입술을 바르는 서툰 손놀림. 아빠처럼 머리를 짧게 자를까 물으면, 한사코 가로젓는 동그란 머리.
원래 아내도 공주님 패션이 싫어서 캐주얼하게, 유니섹스하게 옷을 입히는 편이다. 아들이 입어도 되는 옷을 딸이 입는 수준. 개중에 배색이나 장식품이 조금 여성스러운 정도다. 그러나 들어오는 선물 중에도 공주님 복장의 미미 인형이 하나 둘 생겨나고, 아이가 스스로 오빠와 언니를 구분할 줄 알게되니, 이 모든 게 무슨 헛된 수고랴. 아이는 알아서 자기의 취향과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일 테니, 추석 전에 한번 딱 입히고 말았던 한복과도 비슷한 길이의, 그 치마를, 알아서 스스로 둘렀다.
안그래도 요즘 옷 가지고 고집이라 아침에 깨우는 일이 조금 고달프다. 오늘 아침도 잠옷 위에 잠바만 걸쳐서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가방에 따로 옷을 챙겨넣어서. 아이가, 제 엄마가 잠옷을 벗기니까 자지러지게 울면서 거부를 하더란다. 잠옷 그대로 입고 어린이집을 가겠다고. 어이쿠. 또 1패 추가요. 악어의 눈물을 닭똥처럼 주륵주륵 흘리며, 아이는 잘도 운다. 다른 일이라면 금새 관심을 돌리겠지만, 자던 아이를 깨워 옷을 갈아입히는 게 어디 쉽지가 않다. 이럴 땐 장난처럼 누굴 닮아서 이러냐는 말을 주고 받는다.
눈가를 잔뜩 적시던 녀석이 집을 나서자마자 날아가는 새, 주차장 가득한 차를 보며 기분이 나아지더니 등원을 하는 순간엔 엄마 아빠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 따윈 전혀 없다. 요즘 새로 찜콩한 인형을 끌어안고 손을 흔들며 잘가란다. 그리고나서는 엄마아빠의 손을 탈 때보나는 훨씬 얌전히 앉아서 머리를 묶고, 온 힘을 다해 하루 종일을 논다. 치마도 둘르고 팔과 다리에 팔찌 다리찌까지 걸치고.
밥 담당인 나도, 최근의 맘마파업에 적지 않게 속이 상하지만 그럭저럭 뭐든 먹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옷 담당인 아내는, 이제 앞으로 골치 아플 날이 많아지겠지. 스카프가 진짜 샤랄라 드레스가 될 수 있고, 머리에 쓴 것이 모자가 아니라 왕관 혹은 티아라가 될지 모르겠다. 그럼 또, 그러다가 마는 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따라다니고, 세탁기도 돌리고, 과탄산수소에 담구기도 하며, 세탁 담당인 내가 정신없을 날도 또 올 것이다.
그렇게 아이가 골치아픈 일을 잔뜩 만들고 나면, 작은 두 손에 아로새겨진 나이테에 한 줄, 또 한줄, 무늬가 늘어난다. 우리는 기쁘게 아이의 한 해 살이를 또 추억하고 새로 맞을 것이고, 이 시간에 감사할 것이다. 그저, 공주님 옷이든 찢어진 잠옷이든, 아이가 왁자하게 말썽을 부리는 이 시간이더 없는 행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