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꺼, 아니야, 내꺼 내꺼 내꺼야

자의식과 소유 개념이 생겼다

by 공존

"내꺼어 내꺼어."


24개월의 아이의 목소리는 듣기만해도 신기한 느낌이 든다. 세상에 저런 목소리가 존재하는구나 싶은. 이제 말이 제법 늘어서 사슴, 해주면 쨔즘, 하고 따라한다. 곰 해주면 코옹? 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 혹은 개념을 되살려 반응을 한다. 아이에게 있어 콩은 밥그릇의 콩이기도 하고 벽에 콩 박았을 때의 콩이기도 하다. 어린이집 마당에서 가지고 노는 공도 콩이요, 동물원에 가서 만난 플라멩코는, 외래어이기도 하고 글자도 기니까 아빠가 홍.학 또박또박 말해주면, 그것도 콩이다.


그런 시기에, 이제 아이는 자의식과 소유 개념이 싹트고 있다. 그 아기스러운, 혀는 짧고 작은 성대로 겨우 밀어내는 여린 발성으로, 내꺼, 내꺼라고 뭐든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달라고 한다. 그 시작은 아빠가 늘 차고 있는 결혼반지와 시계였다. 아이를 끼고 밥을 먹다 보면 어지간하면 왼 팔에 아이를 안는다. 그럼 아이가 가장 가까이 또 자주 보는 것이 시계와 반지다. 부드러운 아빠의 살갗에, 톡하고 튀어나온 딱딱하고 차가운 쇳덩이들. 언제부터인지 시계가 신기한듯 빼달라고 하더니, 이젠 제 혀로 시졔, 시졔, 반지, 반지, 하며 빼서 논다.


요 몇 주 전까지, 그러니까 자의식과 소유의 개념이 생기기 전에는 단순한 사물에 대한 흥미였다. 두 돌이 다가오며 한층 인지발달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이제는 자기도 이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물을 새로이 대한다. 지금껏 보송한 갖가지 모양의 털뭉치라는 물상으로만 대하던 인형들도 비로소 자기의 벗이라며 이녕 때론 인형이라고 발음하며 끼고 다니려 하고, 추석 때 사촌언니의 큐브 블럭을 보더니만 내꺼라고 스무번도 넘게 서서 말한다. 지금 막 외삼촌에게 큐브 맞추는 법을 배우려던 사촌언니는 시무룩. 그러나 이내 또 다른 것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 사촌언니에게 큐브를 다시 빼앗기고 나서는 다른 것을 가지고 놀기 위해 달려간다.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즉 자의로 엎드려 원활하게 잠을 잘 수 있을 때 엄마 아빠의 침대에 깔려있던 인견 차렵 이불은 자기가 익숙해지더니, 빼앗아가서 애착이불로 삼았다. 어른들이 침대에 까는 두툼한 이불을 벌써 1년 넘게 개인 소유물로 쓴다. 뭐가 그리 좋은지 네 모서리 중 두개 정도를 꾸욱 손으로 쥐고 잔다. 이불 속에서 다리를 어떻게 뻗치면서 낑낑대는 것을, 이불을 펴서 다리를 편하게 만들어주면 성질을 부리며 다시 자기 다리를 낑궈서, 이불과 공연히 레슬링을 한다. 아이가 만들어가는 자기만의 세상이 이렇게 싹트나 싶더니, 이제는 내것, 내것이라는 확고한 개념으로 발전하여 때론 고집과 생떼로 진화한다.

이때쯤에 아빠로서 난감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가, 아이의 공갈 젖꼭지를 떼어주지 못한 것이 첫번째다. 태어난지 4개월만에 이가 나기 시작한 아이인지라 너무 미숙한 상태에서 이앓이를 겪었고, 때론 밤에 심하게 울었다. 그래서 아이가 유달리 씹는 것에 집착을 하는데 아직도 공갈을 떼기 어렵다.


이것이 그냥 습관으로 남아있을 때 어떻게든 떼주었어야 하는데, 두 돌이 되니 이제는 공갈이 아이의 소유물이고 자의식의 매개체가 되었다. 자기 입으로 쭈쭈, 쪼쪼, 혹은 저쪼찌 이렇게 말하며 요구하는 아이는, 그것을 장난감 삼아서 숨기고, 던지고, 다시 찾아서 입에다 넣고 가지고 논다. 떼주기엔 너무 늦은 걸까? 앞으론 어떻게 해야하지? 싶지만, 밤에는 그런 고민도 모두 무소용이다. 어떻게든 빨리 재워야 아이도 건강하고 우리도 살 것만 같다. 잠 들 때까지의 여러 루틴을 따른 뒤, 마지막으로 공갈을 물리면 아이는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불 꺼진 방안에서 뛰어놀기 시작한다(응?).


둘째로 난감한 것은 이제 "아빠꺼" 놀이를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보면서 나는, 물론 그러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아기 누구꺼?"를 자주 시켰다.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말이 조금 늘면서 아빠꺼 아빠꺼, 잘 대답하던 아이에게 이제, 누구꺼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니 그 말을 시키기가 정말 어렵다. 이제는 해선 안되게 되었다. 가뜩이나 아이는 원래 잠을 재워주는 나와 더 정을 많이 붙였는데, 성 개념도 생기다보니 엄마와 교류가 늘었다. 그것이 나 또한 질투도 나고, 원래 나를 더 따르던 아이는 엄마와의 발전된 관계 속에서 스스로 엄마 최고야 아빠 최고아냐, 엄마 최고 아냐 아빠 최고야를 자꾸 반복해 외치며 논다. 이러니, 이제는 엄마와 아빠와의 비교를 되도록 하지 않도록, 우리 아기 누구꺼?를 물을 수 없게 된다.


아침마다 아이는 화장대 위의 물건들을 탐한다. 아빠의 선크림, 엄마의 오일 등, 짤 수 있는 것이 잡히면 뚜껑을 따고 쭈욱 짜서 바닥에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아빠의 선크림을 면도크림 바르듯 덕지덕지 바르고는 놀란 우리가 달려오면 조금 겁먹은 듯한 눈으로 사태를 파악한다. 발달하는 인지능력만큼 말도 안되게 커지는 사건 사고의 사이즈. 육아에 있어서 어느 소식도 낭보로만 오지는 않으며, 어떤 비보 역시 슬픔 홀로 오진 않는다. 나는 그런 것을 하루 하루 체감하며, 마음에 채워지는 행복만큼 이별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럭무럭 자라 만으로 두살이 되었다. 아이가 잘 성장한 건 기쁜데, 두돌이 지나니 이제 공원 및 시설마다 입장료가 발생한다. 이것은 아주 살짝의 슬픈 소식이긴 하지만, 아이가, 이제 자기것을 외치는 만큼, 자기 몫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소식이니 또 몹시나, 기쁜 소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우리 따님께서는 변기에 공갈젖꼭지를 투척하셨다. 오늘 아침엔 응가도 안해놓고선 응가해쪄요 라며, 양치를 하고 있는 아빠를 보며 욕실 문가에 서 있다. 예측불허 상상초월의 일상에 아이의 것, 아이의 온전한 소유물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늘 기쁘게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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