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나 같은 자식을 낳으면

by 공존

나는 꽤 열등감 덩어리였다.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피해가기 일쑤였다. 그런 성격을 우습게도 공부가 구원해줬는데, 그냥 하루 하루 얌전히 조용히 있다보니 우등생 꼬리표가 붙었고 대학도 그럭저럭 가더니,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하고 다녔더니 나중엔 꽤나 괜찮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내 부족한 점들을 나는 거의 다 고쳤다. 엉망진창이던 악필을 누가 보더라도 빼어난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고, 비만이던 몸은 건강한 체질로 바꿨다. 내성적이던 성격은 잘못된 건 가만 못있는 똑부러진 성격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가지 단점을 고치는 동안에도 딱 하나, 정말 애를 써도 못고친 것이 있는데, 바로 손톱이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다. 마흔살이 된 지금에도.


처음 손톱을 물어뜯고 있던 대략 여섯살 시기의 정경을 나는 기억한다. 8살이 된 누나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서점을 함께 일구시던 부모님은 두분 다 일을 나가서야 했다. 우리집은 서점에 붙은 단칸방이었으므로 부모님께서 모두 책 배달을 나가셔야 할 때면, 두분은 문을 닫아두고 여섯살박이인 나를 홀로 남기고 다녀오시곤 했다. 여섯살박이가 집에서 홀로 뭘 했겠는가? 나는 씩씩하게 혼자 잘 놀았다. 집에 만화책이랑 장난감은 쌓여있었으므로 그 세계에 푹 빠져 놀다보면 부모님은 이내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던 중 어느날은 혼자서 밥을 차려먹기까지 했으니 나의 여섯살도, 그런 일이 가능하던 1980년대도, 그런 시절이었던 게다.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 외로움과 불안함은 그래도 닥쳐왔던 것인지 어느날부터 나는 손톱을 물어뜯게 되었는데, 곁에서 말릴 사람이 없으니 오도독 오도독 손톱을 잘도 물어뜯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손톱을 물어뜯다보니, 아픈 걸 참고도 물어뜯었다. 아픈 걸 참고 물어뜯다보면, 안아파진다는 걸 여섯살 난 아이가 알았다. 다음날 아침이면 마비되었던 통각이 살아나, 손가락이 온통 아팠지만 그걸 견디고 또 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여섯살의 나는 하루 종일 서점에서 만화책만 보고 다름없이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계신다 한들 그것을 막기가 어려웠다. 아이가 얌전히 책을 보고 앉아있으면 어느 부모라도 안심, 아니 방심을 하기 마련.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었고, 손톱을 물어뜯는 일은 내 몹쓸 버릇으로 도저히 고치지 못할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나를 고치기 위해 부모님, 사촌형, 다른 친지들까지 온갖 수를 다 써보았을 뿐더러 나 자신도 군대에 가서 100일간이나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 등 정말이지 여러 노력을 다했지만, 술 담배면 차라리 곁에 두지 않는 수라도 있지 내 손톱은 내 손끝에 달려있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뭔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게 되는지라, 무의식의 상황에선 통제하기가 어렵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허기가 질 때나, 아차 싶으면 이미 손톱은 내 입 안에 빨려들어와 있다.


그런데, 세상에 맙소사. 아이가 생겼다. 게다가 아이는 지금 구강기다. 하루 종일 손을 빨고, 베개도 빨고, 애착인형도 빨고, 매트도 빠는, 마성의 시기. 어릴 때부터 그런 나를 보고 부모님은 "네 자식 낳아서 나란히 손가락이나 깨물고 있어라."하셨는데, 부모님의 신통력, 적중해버렸다. 내가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데 눈 앞에 우리 아기가 손을 아주 오물오물 야물딱지게 빨아잡숫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침내 나에겐 결정적 시기가 또 찾아와버린 것이다. 아이가 자랄 텐데, 나는 아이의 거울인데 이게 뭔가 말이지. 아이가 손을 빨고 있으면 부리나케 빼준다. 그러고서 잠시 있으면 나는 아이 옆에 앉아서 폰을 보며 손톱을 깨물고 있다. 그럼 아이는 또 제 손을 입에 넣겠지. 꽝꽝꽝이다 꽝꽝꽝. 이거 어떻게 하나 싶다. 정말 이러다가 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손톱이나 깨물고 있는 거 아니야?

35년을 못고친 버릇을 이제 고쳐야 할 때가 정말, 정말로 와버렸다고 생각하니, 뭔가 수치스럽고 자괴감까지 느껴지지만 이제는 정말 때가 되었나 싶기도 하다.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회의실에서 손톱이나 깨물고 있는 내 모습이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나 우스웠을까. 누가 내 손톱 깨무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기라도 했으면 오죽 못난 그 모습이나 알 텐데. 그런데 그것을 이제 아이에게 노상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내가 하는 것을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정말 나쁜 교육법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면 내가 그 본이 되어야 하니까. 정말, 내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아빠고 뭐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될 뿐일 테다.


아이가 부쩍부쩍 자라, 너무 빨리 자라는 그 발걸음을 차라리 붙들어 주저앉히고 싶은 요즘이다. 요즘에는 제법 버티고 서더니, 앉아노는 점퍼루에서 두 다리로 버티고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자유자재다. 하룻밤 사이에 부쩍 크는 일이, 갓난아기 때는 드물게 어쩌다 한번씩 보이더니 7개월이 딱 된 지금은, 매일 매일이 신새벽이다. 아이가 오늘 다르고 내일이 다르다. 그런 아이의 눈에도 내 모습은 하나하나 뇌리 깊이 박혀있을 게다. 아이가 기억 못하는 내면에 자리해, 아빠에 대한 심상을 이루게 될 테니.


그리하여 정말, 아이의 눈으로 보니 내 이 구차한 모습이 비로소 수치스러우면서 무섭고, 이제 정말 고쳐야한다 생각 밖에는 들지를 않는다. 내 발목을 잡던 열등감으로도, 어른이 되어 생긴 자존감으로도 고치지 못했던 내 오랜 나쁜 습관을, 이제는 고쳐야 할 때가 왔으니. 정말 이제는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도록, 꼭 이겨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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