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햇살은 마당 구석구석까지 살핀다. 별일 없었냐고? 반짝이는 파란 새순. 돌조각마저도 봄을 맞는다고 해님을 안은 채 보석같이 빛나고 있다. 설렌다.
겨울 동안 집안에만 있던 빨래 건조대를 마당에 내다 놓는다. 한 가득 빨래를 넌다. 그들도 봄을 아는지 바람과 인사 중이다. 너풀너풀. 너무 반가워서 손을 잡고 날아가려는데. 알쿠! 노란 빨래집게로 콕, 집어 놓는다. 리본을 달아놓은 거 같다. 예쁜 빨래들. 하얀색 양발 한 켤레. 짝꿍을 놓칠까 봐 초록색 리본으로 손을 잡아준다. 알록달록 베갯잇. 빨간색 꼭지로 표시해준다. 건조대 한 가득 색깔 맞춰 서있는 빨래집게들. 해님은 봄맞이 장식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봄의 마당을 인심 좋게 따듯하게 비춘다. 바람은 뭐가 그리도 반가운지 수다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빨래들은 온몸을 흔들어 가며 맞장구를 친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빨래들. 그들은 나보다 더 신나서 봄을 즐긴다. 행복해 보인다.
흙이 잔뜩 묻은 노란 장화. 아이의 얼굴을 씻기듯이 살살 닦아서 햇빛에 널어놨던 기억.
그날, 봄 마당.
어미가 한 눈 판 사이. 노란색 장화 주인은 휙 가져다가 신고 나가 버렸다. 젖은 채로….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빨래집게의 추억도 사라진다. 발코니에 누워있는 봄 햇살을 보니 문득, 아이들이 놀았던 마당 깊은 집이 생각난다.
늙어 가는지….
지금도 아이들이 장화를 신나? 마음속에는 노란색만 보면 작은 아이가 떠오른다. 수학 공식처럼 ‘작은아들은 노란색이다.’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문신처럼 가슴속엔, 노란색 장화를 신고 있는 아이가 박혀있다.
어린 꼬마는 운동화, 노란색 장화, 슬리퍼, 하얀 고무신을 신기하리만치 가지런하게 늘어놓고는 순서대로 한 번씩 신고는 놀다가 들어온다. 아들이 가장 좋아한 신발은 노란색 장화였다.
노란 장화 주인. 그날의 마당에서. 지금은 33살.
노란 장화
노란색.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
노란색.
내가 가장 미안해하는 색.
노란색.
봄이면 내 중학교 담벼락에 피었던 색.
노란색.
작은 아들 장화 색.
작은 아들.
내가 너무 미안한 사람.
노란색.
내가 많이 아파하는 색.
노란색 장화만 신으면 즐거워 하던 아이가 머릿속에 지나간다. 도토리같이 이마가 빤들빤들. 거무스레한 피부를 가진 아이. 너무 예뻐서 깨물어 주고 싶다. 햇살 좋은 오늘. 노란색 장화를 신은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 마당에서 노란색 장화를 닦고 있던 젊은 날의 여인도 생각난다. 추억은 마음인가. 어린 날의 아이가 풀락 거린다. 그런데, 왜 기억은 아련하게 아픈 거지. 못 해준 게 많아서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 예쁜 노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