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가 되어줄게요

엄마에게 여자로써의 추억을 심어주기.

by 커피맥주

아빠의 흔적이 가득한 원래 집에서 엄마는 더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안방을 들어가지도 않고,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으셨다.

서둘러 이사를 가기로 했다.

이제 이사가 2주쯤 남았다.

버릴 가구, 가져갈 가구를 고르고 있다.

엄마가 빠르게 이사가길 원하셔서, 매매를 하질 못하고, 일단 전세놓고, 전세집을 구해서 이사를 가기로 했다.


지금 와서 부모님의 집을 둘러보니, 엄마의 취향이 반영된 가구가 없어보였다.

25여년전 비싸게 주고산 가죽소파라 오래 써야 한다고...10년전 엉덩이 부분 가죽만 바꿔서 쓰고 계셨다.

그래서, 등부분과 엉덩이 부분 가죽색깔이 달라서, 사진을 찍어 놓으니 더 기괴했다.

프레임 자체도 올드한 감성 그대로.

너무 튼튼하고, 멀쩡하지만, 당근에 올려도 누가 가져갈것 같지도 않은 그런 소파였다.


얼마전 사셨다는 침대프레임은, 실용성을 위해 아래 두꺼운 서랍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밝은 원목 프레임침대였다.

매트리스 높이가 높아, 키가 작은 엄마에게는 부담스런 높이로 보였다.

평생 실용성이 최우선의 가치로 살아오신 아빠가 고른 침대프레임였으리라.


식탁역시, 의자와 식탁높이의 차이가 커서, 밥을 먹을때 자세가 불편하다.

이게 과연 식탁으로 나온 테이블인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들었었다.


전체적으로 가구가 무겁고, 고풍스럽고, 짙은 체리색 원목이다.

엄마에게 이번 기회에 가구를 모두 바꾸자고 했다.

처음엔 소파가 비싸게 주고 산거라고 아깝다고 하시더니, 소파구경하러 가서, 바로 밝은 아이보리색 소파로 계약을 하고 오셨다. 침대도 낮은 프레임으로 바꾸자고 해서 어떤게 마음에 드냐고 했더니, 원목이 싫으시단다. 벨벳류 천으로 싸인 침대프레임을 고르셨다.

엄마가 지금 고른 것들이, 어찌 보면 지금 가구들의 반대다.

원목싫고, 어두운 색 싫고, 밝은 색에 소프트한 패브릭으로 고르고 계신다.


문득 생각했다.

이젠 온전히 엄마만의 집이니, 지금 가는 집이 전세집이라도, 침실 만이라도, 소녀소녀하고, 핑크핑크 파스텔 톤으로 내가 장식해 드리리라.

마치 내가 우리 딸 방을 꾸며줄 때처럼,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 이번에 방을 예쁘게 꾸며드리리라.


침대는 아이보리로,

바닥엔 화사한 색깔의 몽글몽글한 카펫도 깔아드리고,

하얗고 바스락거리는 침구로,

커텐은 파스텔톤 여리여리한 핑크색으로 바꿔드릴게요.


엄마,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