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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 민 DAW MIN Sep 29. 2022

#1 미얀마 만달레이 공항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커피를 심는 농부가 되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커피를 심는 농부가 되었다.

말 한마디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먼 곳.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고 한 시인 김수영을 생각한 곳.

농장 조성 초기 건기의 미얀마

 구글 어스에서 고도를 체크하고 방문한 미얀마는 한 번도 실제로 마주하지 않고 당도한 곳이다. 겁도 없이... 왜냐하면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희미하지만 뭉클한 행복 언저리를 만지며 후덥지근한 3월 건기의 만달레이 공항. 조명도 냉방도 불분명한 미얀마 중부 공항에 당도했을 때, 그동안의 학습과 이성은 잠시 정지된 채 오로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짐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멀미와 두통에 괴로웠다.


 내가 여길 왜 왔지, 왠지 불길해... 아 하나도 읽을 수가 없네... 공항이 왜 이렇게 더운 거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안녕하세요.

입국장으로 걸어 나오는 나를 알아보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오던 키 큰 미얀마 남자.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까무잡잡한 남자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때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던 그의 인상이 너무 좋아서 순식간에 첫 방문지에 대한 불안감이 무장 해제되었다. 그건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기도 했지만 까만 피부에서 반짝이던 선하고 맑은 눈동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국 커피공장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한국으로 시집온 마을 사람에게 소개받은 저민 씨는 한국에서 18년을 일하고 막 미얀마로 귀국한 상태였다. 우리가 머무는 며칠간 통역을 부탁했는데 한국 사람과 오래 일해서인지 그는 예의 바르고 반듯했으며 미소가 훌륭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후끈한 열기가 코와 입을 지나 가슴팍까지 스며든다.

 화단에는 메마른 나무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말라 가는 나무들과 그럼에도 나뭇가지들 끝에 가냘프게 말려 들어간 나뭇잎들은 손끝만 닿아도 부서질 듯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나뭇잎 끝에 더 아슬아슬하게 바스락 소리를 낼 것 같은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달려 있었다. 그 나무와 꽃들은 상상 속에서나 책 속에서나 영상에서 보던 것들임에 분명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방치되고 외롭고 괴로운 듯 보였다.

화단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던 택시 드라이버들은 출입문으로 나오는 우리 일행을 보고 택시 택시를 연발하며 따라온다.  


 하얀 와이셔츠 상의에 론지를 입은 공항 직원들과 택시 기사들의 눈은 줄기차게 나를 따라온다. 그들은 여기까지 왜 왔나 하는 표정으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나의 뒤통수까지 줄기차게 쳐다보고 있어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 도요타 중고 승용차의 문을 열자마자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뜨뜻한 바람과 모기가 끈적한 몸에 달라붙는다.


 공항을 벗어난 차는 에어컨도 없이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며 핀우린으로 향한다. 뜨겁고 건조한 바람과 먼지는 한데 엉겨서 얼굴과 머리에 달라붙고 공항을 벗어나는 도로 위엔 뜨거운 부겐베리아 꽃이 바짝 마른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꽃과 나무는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어울리지 않았고 아는 사람 집에 잠시 살러 들어온 것처럼 꽃은 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부겐베리아는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계속 피어 있었고 물기 없는 나무도 피곤해 보였다. 그랬다. 3월. 건기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 만달레이는 그렇게 타오르고 있었다.


 요한은 태블릿을 꺼내 창가에 밀착시켜서 차가 달리는 지점을 계속 체크해보는데 아주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제 계속 올라갈 거야 라는 말만 한다.

그래 올라갈 거야..

요한은 하나도 지친 기색이 없다.

그는 분명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지금까지 나와 같이 있었는데 그의 에너지는 생생하고 눈은 반짝인다. 그는 지금 신대륙에 내린 사람처럼 신기하고 어쩌면 경건한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밤을 새고 낮에도 앉아 또 보고 또 돌려보던 구글 어스의 이정표가 지금 정확할지 안 할지 그는 매우 흥미로와 보인다.


 공항을 벗어나서 톨게이트를 지나 시야가 흐려진다. 창문 너머로 뿌연 먼지와 길가의 가게와 간판과 주유소와 사람들과 노점까지 온통 뿌옇다. 앞에 앉은 저민이 이곳이 채석장 마을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그 채석장 끝에 여자 교도소가 있으며 그 여자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채석장에서 일을 한다고 지나가면 보일 거라고 말해준다. 사람이 일일이 차를 세우고 장부를 적으며 통행료를 받는 톨게이트를 지나니 왼편으로 높은 돌산과 길게 늘어진 대나무집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에 론지를 입고 돌을 나르는 여인들이 보인다. 대나무로 만든 작은 바구니 담긴 돌을 나르고 있는 가냘픈 여성들이 보인다.


 차선이 없는 굽은 도로로 자동차들과 트럭들은 쉼 없이 올라가고 내려온다. 짐을 많이 실은 화물 트럭은 굉음을 내며 올라가 보지만 다시 제자리고, 화물칸에 앉았던 웃통을 벗은 젊은 사내들이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로 받히고 다시 차를 밀고 따라가느라 땀으로 범벅이 돼가고, 줄지어 올라가지 못한 차들은 길게 늘어서서 더위와 먼지와 씨름 중이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면 흙먼지가 누렇게 묻어 나왔다. 입안은 어석어석 먼지가 씹히고 말할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왔다. 휴게소에서는 엔진을 식힌다고 호스로 물을 틀어 차에다가 끼얹고 있다. 버스도 트럭도 사람도 물을 마시고 있다.


 우리 차도 잠시 휴게소에 세우고 요기를 좀 하고 가자고 한다. 시원한 맥주 한 병과 식사를 못한 기사와 저민은 비빔국수를 시켰다. 그리고 미지근한 국물이 하나 따라 나왔는데 국그릇 가운데에 수저가 두 개 담겨져 있었다. 사람은 넷인데 수저는 두 개. 테이블 옆 의자 위에는 맥주잔이 담긴 플라스틱 바가지가 있었다. 우리가 맥주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바가지 물에 반쯤 담겨져 있던 잔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는다.

맥주 한잔을 마시고 차를 식히는 동안 재래식 화장실 옆에서 사탕수수 주스를 파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칸막이도 없이 하수도 옆에서 기다란 사탕수수를 집어 프레스 같은 것으로 누르면 사탕수수가 쫙 눌리며 주스가 흘러나온다.


 나는 사탕수수를 구경하고 사람들은 나를 구경한다.

시선을 거두고 차에 오르며 그래... 올라갈 거야 조금만 참으면 돼 거기 가면 시원해질 거야라고 몇 번을 되뇌이는 동안 정말 거짓말처럼 높은 고원이 펼쳐진다. 언덕 아래로 만달레이는 까마득하게 작아지고 서늘해진 공기.

와, 건기임에도 풍성한 나뭇잎들과 물기를 머금은 꽃들. 깜짝 놀랄 만큼 바뀐 시야에 저절로 창문을 내렸다. 얼굴을 때리는 공기는 차갑고 신선하며 선명한 하늘과 시원하게 코를 감싸는 나무와 꽃들의 향기에 저절로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그래 올라왔어. 여기야. 우리가 찾던 곳.

요한. 다 왔어.


 만달레이에서 핀우린으로 올라오면 해발고도 1000미터의 고지대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조사한 대로 큰 일교차가 느껴질 만큼 공기는 서늘했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거나 라이더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어둑해진 도로 위에서도 형형색색의 꽃들은 물기를 머금고 반짝였으며 어둠이 내리는 하늘은 짙푸르고 가깝거나 멀거나 눈 안에 들어오던 온통 초록은 아름다웠다.

집 앞이나 가게 앞에는 희미하고 차가운 형광등이 하나 둘 켜지고 선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마침내 차가 호텔로 들어서고 태블릿을 접으며 요한이 웃었다.

맞아. 여기야. 다 왔어.


아라비카 커피는 해발고도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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