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을 통해 본 사회 속 인간
일반적으로 10대 청소년들의 삶에서 교사는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또래 집단이며, 또래 집단이 아이들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사례는 바로 전학이다.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사 연수 혹은 교사가 모여있는 공간에 가면 모두가 공통되게 동의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요즘의 전학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전학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이사로 인해 원래 다니던 학교로의 통학이 어려울 경우에 이루어지는 전학이다.
두 번째 부류는 기존 학교에서의 교우관계 부적응으로 인한 전학이다.
세 번째 부류는 바로 강제전학 혹은 권유 전학의 사례이다.
첫 번째 부류의 전학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상이며 별다르게 언급할 것이 없다.
세 번째 부류의 경우는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이 저지른 비행, 혹은 사건 사고로 인해 기존 학교의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클 경우 이루어지는 전학이다. 이 경우는 나머지 학생들과 교사들을 위해서도(교권을 침해하는 행동이 발생하였을 시) 전학이 필요하기에 이 또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의 경우는 이렇게 작성하는 게 조심스러울 정도로 요즘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학 후의 삶에도 엄청난 변화가 뒤따른다.
실례로 올해 우리 학년에 전학 온 모든 아이들은 두 번째 이유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을 한동안 교사들은 알 수가 없었다.
부모들과 전입생, 그리고 전출 학교의 교사 모두가 이에 대해 함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새로 전입생을 받게 된 학교의 교사들이 아이들의 전학 이유를 알 필요는 전혀 없다. 전학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학생과 학부모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를 굳이 밝히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전입생이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등 전학 후에 일이 생기면 이 때는 정말 난감한 일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가장 난감한 경우는, 교사는 전입생이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던 전학 사유를 학생들이 SNS나 친구 등을 통해 알게 되어 교사보다 먼저 인지하고 있는 경우이다.
10대 들의 인생에서 교우관계는 정말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고, 그래서 개개인의 상호교류가 중요한 것이 당연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또래 집단의 영향은 성인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어느 정도 감으로는 학생들의 전학 사유를 추측은 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통학 시간이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존 학교를 계속 다니길 원하며 교우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의 전학 사유에 대해 어느 정도 추측은(?) 하지만 모른 척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결정을 하고 전학 온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하고 새로운 교우관계를 형성한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결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본 아이들의 절반 정도는 또다시 이전 학교와 비슷한 일상을 겪게 된다. 나는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SNS라고 생각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SNS는 인생의 연장선이며, 간단히 말해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방과 후에도 SNS로 끊임없이 사회적 교류를 지속하며 원거리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게 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가면서 까지 사회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과도한 정보의 교류는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새로운 피해를 양산해 내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저격글'을 전출 간 아이의 새로운 학교 페이스 북 담벼락에 적는다거나 새로운 학교의 아이들 계정 혹은 메신저로 연락을 취해 이전 학교에서의 상황들을 전하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원색적인 방법들이 지금의 10대들 사이에서는 만연하고 있다.
어쩔 때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성선설을 주장했던 나의 기존 가치관에 큰 혼돈이 오기도 한다. 아이들의 모습이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원색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외로움과 고립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것,
주변인들의 시선에 민감하며 타인과의 교류에 엄청난 가치를 두는 것,
또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을 향한 반감을 원색적으로 드러내는 것,
소문이 생성되고 그 소문이 또 다른 소문을 낳아 한 사람의 인격을 무참히 짓밟는 등
학교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갈 수밖에 없고, 또 전학 후에 힘듦을 겪는 사례 등을 보면서 정말 수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아이들의 삶에 따스한 바람일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학부모님들 중 어떤 분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교사들에게 묻기도 하신다.
솔직히 말하면 가장 최선의 방법이나 매뉴얼 적인 정답은 없다고 본다. 모든 상황이 다르고 아이들의 교우 관계는 어떤 면에서는 성인들의 사회생활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학생 본인이 노력하고, 부모가 도우며 교사가 노력한다면 분명 이러한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걱정 속에 전학을 왔으나 웃으며 생활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나는 분명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 가능하다는 확신이 든다. (실제로 전학 후 매일 울며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우리 반 전입생이 다시 웃으며 잘 적응하게 된 사례도 있기에 더더욱! 확신한다.)
끝으로 우리 반에 새로이 전학 온 학생들과 앞으로 내가 맡게 될 전입생들이 좀 더 웃고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