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햇살이 결정하는 커피의 성격

가공법 이야기

by 커피해커 LOE

"이 커피는 왜 이렇게 깔끔하지?"
"이건 왜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지지?"


같은 에티오피아 원두라도 카페마다 향이 다른 경험이 있었다. 처음엔 로스팅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로스팅보다 훨씬 앞에, 가공 방식이 이미 맛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커피 체리를 수확한 뒤에는 안에 있는 생두를 꺼내야 한다. 문제는 그 겉에 붙어 있는 과육, 점액질, 껍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이 처리 방식 — 전처리(가공법) — 이 커피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깔끔하게 씻어낼 수도 있고, 과육째 말릴 수도 있고, 그 중간 어딘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워시드(Washed) — 맑고 선명한 산미

껍질과 과육을 먼저 제거하고, 점액질을 발효와 세척으로 깨끗이 씻어낸 뒤 건조한다. 결과는 깔끔하다. 밝고 선명한 산미, 섬세한 향미가 특징이다. 커피 본연의 맛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맑은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내추럴(Natural) — 과일향과 와인 같은 복합성

체리를 통째로 건조한다. 과육과 껍질이 붙은 채로 시간을 보내며 자연 발효가 일어난다. 그 발효가 묵직한 바디감과 과일향, 와인 같은 복합성을 만들어낸다. 화려하고 개성 있는 향을 즐기는 이들에게 매력적이다.


허니(Honey) — 단맛과 산미의 균형

껍질만 제거하고, 점액질은 일부 혹은 전부 남긴 채 건조한다. 워시드와 내추럴의 중간이다. 단맛과 산미의 균형이 좋고, 클린하면서도 적당한 복합성이 있다. 남긴 점액질의 양에 따라 옐로우, 레드, 블랙 허니로 나뉘기도 한다.


최근에는 실험적인 방식들도 주목받고 있다. 젖산균 발효를 활용하는 젖산 발효(Lactic Process), 이산화탄소 환경에서 발효해 와인 뉘앙스를 구현하는 탄산 침용(Carbonic Maceration), 발효 중 과일이나 허브를 첨가하는 인퓨즈드 커피(Infused Coffee)까지. 인위적이라는 논란도 있지만, 커피의 다양성을 넓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온도, 습도, pH를 정밀 제어하는 스마트 가공 시스템도 등장했다. 커피 가공이 직감과 경험의 영역에서 데이터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가공 방식 하나하나에는 생산자의 고민이 담겨 있다. 물이 부족한 지역은 내추럴을 선택하고, 품질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려는 농장은 워시드를 고집한다. 어느 방식이 더 우월하다는 건 없다. 단지 다른 것이다.


어떤 가공 방식의 커피를 마시느냐는 결국, 어떤 맛의 경험을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커피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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