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볶으면 되는 줄 알았다.
생두를 넣고, 온도를 올리고, 크랙이 나면 빼내면 된다고. 그런데 매번 맛이 달랐다. 어떤 날은 산미가 살고, 어떤 날은 무겁고 둔탁한 맛이 났다. 같은 생두인데도.
문제는 목표가 없었다는 거였다. "이 커피를 어떤 맛으로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한 번도 먼저 하지 않았다.
맛의 방향부터 설정하자
프로파일링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커피는 어떤 풍미를 가져야 하는가. 드립용인가, 에스프레소용인가. 원두는 어떤 가공 방식인가. 산미, 단맛, 바디감 중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설계 없는 로스팅은 우연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원두 특성에 따라 열곡선이 달라진다
내추럴 가공 원두는 달콤한 과일향이 특징이다. 초반에 너무 빠른 열을 가하면 그 향이 날아간다. 워시드는 수분이 많아서 건조 단계를 충분히 가져가야 한다. 같은 아라비카라도 가공법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추출 목적에 따른 로스팅 설계
에스프레소용으로 볶은 원두를 드립으로 내리면 쓴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드립용으로 볶은 원두를 에스프레소로 추출하면 산미가 너무 튄다. 목적이 다르면 설계도 달라야 한다.
고온단시간 vs 저온장시간
로스터의 철학에 따라 열곡선을 구성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고온단시간(HTST)은 빠른 열로 단기간에 향미를 끌어낸다. 산미나 화사한 향을 살리기 좋지만 균형 잡기가 까다롭다.
저온장시간(LTLT)은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익힌다. 복합적인 향과 바디, 안정적인 단맛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길어지면 밋밋해질 수 있다.
정답은 없다. 원두의 특성과 로스터의 의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향미의 황금 비율 — DTR
전체 로스팅 시간에서 디벨롭 타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DTR이다.
※ DTR은 추출 방식에 따라 조정될 수 있으며, 위 수치는 설계의 예시로 참고하면 좋다.
단 1~2초, 1~2도의 차이로 맛이 달라진다. 1차 크랙 전의 ROR이 너무 급하면 산미가 날카로워지고 향이 날아간다. 배출이 늦으면 단맛이 사라지고 쓴맛이 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그래프 해석과 설계는 로스터의 감각과 데이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커피의 맛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는 것이다. 그 설계는 바로 이 곡선 위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