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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Nov 20. 2020

엄마의 부재

우리의 소중한 '올라프'


엄마가 친구분들과 주말에 2박 3일로 여행을 가신 날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나머지 우리 세 명은 꿀 같은 낮잠을 청하고 유일하게 한 집에 모여 있는 주말이었다. 각자 다른 시간대에 먹는 식사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파악되는 쌓여 있는 설거지 그릇들과,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금방이라도 엎어질 것 같은 빨래통, 과식해서 빵빵해진 음식물 쓰레기통, 탁자엔 쓰고 버린 휴지들과 먹다 흘린 국물 자국들이 묻어 있었다. 엄마가 잠깐 집을 비웠을 뿐인데 며칠 만에 집안 상태는 변해 있었다.


서로 미루고 미루다 셋 중에 그나마 더러운 꼴을 잘 못 보는 내가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색깔들을 분리해 세탁기를 여러 번 돌리고, 거실부터 개인의 방들까지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등등 아침부터 청소하기 시작했지만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 시간은 어느덧 저녁쯤이 되어 있었다.


밖에서 놀다 온 것도 아니고 회사 업무를 본 것도 아닌데 반나절이 지나가 있었고, 몸은 상당히 지치고 피곤했다. 청소 후 깨끗해진 집 안을 보며 이 하루를 매일 반복했을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 집은 항상 깨끗했다. 아침에 일어나느라 바빠 팽개쳐놓는 이불들과 베개는 밤에 잠들 때면 항상 예쁘게 개어 있었고, 방안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집 안은 한결같이 깨끗했기 때문에 너무 당연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무심했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집안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한결같이 깨끗한 집엔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하루의 절반은 집안일이었을 것이고, 컨디션이 좋거나 좋지 않거나 매일 출근하며 연차도, 휴가도 없는 전업주부였다. 그럼에도 엄마는 우리에게 한 번도 집안일을 했다며 생색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엄마가 청소를 하면 나는 “밥 먹는데 청소 좀 하지 마. 먼지 날리잖아”라며 짜증을 부리기 일쑤였고, 퇴근 후 내가 TV를 보며 쉬고 있을 때 엄마가 “가서 방 좀 정리 좀 해.”라고 잔소리를 퍼부을 때면 당장이라도 자취방을 얻어 집을 나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전까지 ‘엄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가끔 내가 인심 쓰듯이 설거지를 하고 엄마에게 칭찬을 들을 때면 오히려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엄마는 출근 안 하고 집에 있어서 좋겠다.”라는 생각 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었다.


전업주부를 검색하면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라고 나온다. 집안일이란 빨래, 요리, 청소, 장보기 등등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데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될 중요한 일들인데 애석하게도 집안일은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배우 서유정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주부로서 가장 힘든 점은 대화와 공감 부족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와 대화라도 하면서 위로를 받는다면 금방 풀릴 텐데 그런 상대가 없어 혼자 감내하고 삭입니다.”

‘단 하루라도 육아에서 벗어난다면 뭘 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엔 마음 편하게 밥 한 끼 먹고 여유롭게 경치를 둘러보거나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다고 답했다. 참 안타까운 말이지만, 이건 모든 주부들이 느끼고 있는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결혼 후 누군가의 아내였다가, 엄마가 되었다가, 주부로 산다는 것. 한 인간으로서 세 가지 임무를 

해내는 그들은 책임감 또한 얼마나 무거울까.


엄마를 생각하면 겨울 왕국의 올라프가 떠오른다. 올라프는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보다 우선시하는 거야.”, “어떤 사람 앞에서 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우리는 엄마의 희생을 무심코 지나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세상에 당연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무례하게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올라프가 온도가 높아져 다 녹아 버리고 사라졌을 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에 감사하고 존중하며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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