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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Nov 20. 2020

과거로 시간 여행하는 법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유일한 시간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예쁜 다이어리에 숨기고 싶은 나의 속마음을 쓰거나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날엔 메모에 사진을 덧붙여 그날을 기록했고, 특별한 기념일을 혹여나 잊을까 알록달록한 펜으로 표시해가며 다이어리를 썼다. 


나에게 다이어리는 비밀을 지켜주는 친구와 같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 속마음과 생각을 공감해 주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종이로 된 친구 말이다.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욱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놓기도 했었다.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속상하거나 힘들었던 날에 다이어리를 많이 찾아 썼다. 어릴 적 썼던 다이어리와 차이점이 있다면 다이어리에 그날 있었던 일들과 어떤 점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써 내려가면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될 수 있었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후 항상 마지막의 끝맺음은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며 끝마쳤다. 그러고 나면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다이어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건 직장 생활을 한지 1년 반쯤 되었을 때쯤 처음으로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였다.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활의 안정감에 감사하고 뿌듯했던 일상들이 어느 순간 철장 안에서 반복하며 쳇바퀴를 돌고 있는 햄스터처럼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숨이 막혔다.


삶의 이유를 되찾고 싶었던 나는 회사 연차를 내고 전에 썼던 다이어리를 들고 근처 카페로 갔다. 대학교를 다닐 때 썼었던 3년 전의 그 다이어리 안에는 당시에 마지막 졸업 과제였던 학교와 연계된 회사에서 두 달가량 인턴으로 근무했을 때의 글들이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출퇴근의 지옥철과 보수적이었던 회사의 규칙들로 힘들어하며, 인턴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한풀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이어리를 한참 동안이나 펼쳐 보던 중 마음을 후벼파며 와닿은 글이 있었다. 두 달의 인턴 생활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 쓴 글이었다. ‘너무 대견하고 잘했다. 힘들어도 버티면 뭐라도 돼있구나. 그때 내가 포기했었다면 지금 이런 뿌듯하고 뭉클한 감정 못 느꼈겠지?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일단 버텨보자. 버티고 이런 감정 또 한 번 느껴보자.’라고 나에게 보내는 위로와 덧붙여 용기를 주는 말까지 쓰여있었다.


그 글을 읽는 동안 마치 그때의 상황으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과거의 감정과 상황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당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다이어리를 통해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했다. 어쩌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비슷한 상황과 감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과거의 나에게 공감이 되면서 위안이 되었다. 그 힘이 꽤 컸는지 신기하게도 알 수 없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겼고 나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이어리 속의 글을 읽는 것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기록했던 글 들을 읽다 보면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패기 넘치고 걱정이 없었던 과거의 내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론 예전보다 성숙하고 철들어 있는 내가 대견해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다이어리를 쓰면서 느꼈던 좋은 점들이 많다. 좋은 점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겪었던 상황을 수기로 써 내려가다 보면 ‘상대방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회사에서 실수를 한 날이면 상황을 되짚어보면서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반성을 하곤 한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게 되고, 우울증을 예방하는데도 효과가 높다고 한다. 어느 책에서는 글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고, 나도 모르는 나를 보게 되고, 위로하게 되고, 회복하게 한다고 말이다.


이슬아 작가의 말도 와닿는다. “글을 쓰는 날에는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이 듭니다. 하루가 두 번씩 재생되는 느낌이랄까요? 겪으면서 한번, 해석하면서 한번, 이렇게 인생이 두 배로 풍부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라는 말도 공감된다.


이처럼 오늘 하루를 글로 기록해보면 어떨까. 좋았던 하루라면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하루를 되짚어 보며 하루를 두 번 사는 기분을 느껴보고, 오늘 하루가 속상하고 괴로웠다면 그 감정을 끌어안고 잠들지 말고 글을 쓰면서 오늘의 나를 위로해 보길 바란다. 장담하건대, 오늘 썼던 다이어리 속 글 들은 미래의 나에게 또 한 번의 위로와 용기를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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