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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Jan 02. 2021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

잊을 수 없는 파리 민박집 이모

영국에서 프랑스 파리로 왔을 때였다. 파리의 첫 느낌은 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고 습한 공기가 맴돌았다. 혼자 유럽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후 제일 걱정되고 무서웠던 나라는 파리였다.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하는 소매치기, 돈을 뜯거나 심지어 공항버스 안의 수화물 짐들까지 들고 튄다는 뉴스까지 접했던 터라 나의 두려움은 최대치였다.


내가 파리에서 3박 4일 동안 묵기로 한 숙소는 한인 민박 집이었다. 치안이 안 좋은 편이었지만, 다행히도 지하철 출구와 가까이에 위치해있었고, 아파트 안에 있는 민박집이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을 하며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건 민박집에 종사하시는 주방 이모님이었다. 그녀는 50대 정도로 보였고, 곱게 머리를 묶은 단정한 차림에 연변 말투를 구사했다. 예약자 정보라곤 이름만 확인한 후 대뜸 나에게 “점심은 먹었어요?”라고 물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와의 3박 4일은 시작됐다.


그녀는 민박집에서 아침과 저녁의 식사를 챙겨주었고, 음식 솜씨가 정말 훌륭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은 적이 없었고, 한 끼 가격이 만만치 않아 끼니를 거르곤 했는데, 그녀의 음식 솜씨는 저녁을 먹기 위해 관광을 포기하고 일찍 숙소에 들어갈 정도였다.


한인 민박에 내가 머무를 땐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들에게 똑같이 엄마처럼 대해주며 챙겨주었다. 사람들이 외출을 나설 때면 문 앞에서 “오늘 이쁘고 멋있네요. 조심하고 재밌게 놀다 와요.”라는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주었고, 저녁식사 시간이 넘도록 숙소로 돌아오지 않을 땐 개인 카톡으로 많이 늦냐며, 숙소에 돌아왔을 때 몰래 밥을 챙겨주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부담스럽지 않게 선을 지키며 보살펴주었던 그녀의 따뜻하고 섬세한 다정함이 나는 참 좋았다.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아도, 그녀의 배려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파리 여행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숙소로 돌아오면 엄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그녀가 있었기에 파리에서의 여행을 잘 끝마칠 수 있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새벽 첫차인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그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숙소를 나섰다. 깜깜하고 추운 새벽에 홀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오며 나에게 은박지로 감싸진 김밥 한 줄을 건넸다. “어젯밤에 너 주려고 싸놨다. 도착해서 아침 먹어.”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돌아갔다. 그 김밥을 보며 나는 잠시 멍했다. 그녀의 따뜻한 배려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녀는 마지막 날까지 나에게 너무 과분한 정을 주었다.


그날 공항에서 홀로 먹은 김밥 한 줄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김밥이다. 그 김밥에는 훌륭한 맛뿐만 아니라 그녀만의 따뜻한 정이 곁들여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가끔씩 그녀의 카톡 프사를 본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가 귀여운 어린 아들과 찍은 사진이 눈에 띈다.

민박집에 머무른 그들에게 어떻게 한결같이 정을 주며 따뜻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민박집에 거쳐갔던 수많은 여행자 들을 보며 아들을 떠올렸을까.

그녀는 틀림없이 누군가의 멋진 어머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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