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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Oct 03. 2021

제주도 사찰, 약천사에서

외로울 땐 산, 괴로울 땐 바다로

대낮부터 약천사라는 사찰을 찾아갔다. 제주도에서 이국적인 풍경과 큰 규모의 사찰로 꽤나 유명했다. 입구 앞의 야자수 길을 걷는 동안 산뜻한 새소리와 살짝 부는 바람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무교인지라 들어가서 절은 하지 못하고 근처 그늘진 벤치에 앉아 사찰을 한참 둘러보았다. 뒤편으로 사찰을 걸치고 있는 바다는 멍 때리기 딱 좋았다. 한참 멍을 때리는 와중에 앞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다도를 체험하는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 안에서 스님 한분과 여성 한 분이 상담을 하는 듯이 무거운 대화가 오갔다.

"화를 자주 내게 돼요. 부담감과 압박감 같은 것도 있고요."여자가 말했다. 그러자 스님이 하시는 말씀 "괜찮습니다. 그래도 본인이 화내고 있는 걸 인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담감은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내 감정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별 말이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깊이 뼈가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걸 하지 못해서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주는 만큼 받고, 감정의 문을 닫은 채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 불구가 되어간다.

'감정 불구'란 '좋을 때 좋음을 느끼지 못하고, 슬플 때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흔히들 감정 불구는 눈물이 안 나오는 거라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감정 불구가 되었다는 증거는 눈물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눈물 버튼이 고장 난 로봇처럼 울 일이 아닌 일에도 눈물이 나려고 하고, 자주자주 울컥해지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다.


그럴 때면 당장 짐을 싸서 바다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외로울 때는 산을 오르고, 괴로울 때는 바다를 보라."라는 말이 있듯이 잔잔하게 파도치는 바다는 그동안 내 안의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묵은 체증을 씻겨낼 것이다.


때때로 마음의 병은 바다로 치유될 때가 있다. 특별한  딱히 없다. 시원한 바람, 짭조름한 바다 냄새, 파도치는 바닷물  삼박자가 어우러져 알아서 생각과 마음을 비워줄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건강한 삶,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라도 바다를 좀 더 가까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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