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글렌 서울 - 상수동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43 1층
키워드: 빈티지, 라이트한 원두, 더블샷 옵션
푸글렌 서울이 생겼다는 소식이 문득 떠올라 7011번 버스를 타고 상수동에 갔다. 상수역 바로 근처라니 조금은 의외의 장소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저 멀리서 종이학 모형의 로고가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규모의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 형태의 공간과 돌연 조우한다.
칵테일 바를 연상시키는 어쩐지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가 모자를 휙 벗으며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럼을 한 잔 주문할 듯한 쿨한 분위기. 바닥과 벽은 목재를 사용하여 빈티지한 느낌. 곳곳에 장식된 오브제는 유럽 빈티지풍을 사용하여 예술 작품을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정화된 공간 분위기 덕에 사람들은 정돈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큰 테이블 주변에 소파가 디귿자로 둘러싼 가장 안쪽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도와 영토라는 책을 펼쳐서 한 챕터를 읽고 덮었다. 연락이 끊긴 두 친구가 우연한 계기로 연락이 닿게 되면서 잊힌 과거가 펼쳐지는 얘기다. 한 사람은 둘의 관계에서 도망쳐서 새로운 삶으로 도피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망친 사람의 그림자를 쫓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재회 후 달라진 미래는 없다는 사실로 이야기가 뚝 끊겼다.
커피를 마시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실내 공기도 답답해질 터라 밖으로 나왔다. 정오를 기점으로 인파가 카페에 몰려들고 있어서 적당한 시간대에 잘 머물다 나왔다는 생각을 했다.
방금 전 읽은 책의 주인공이 재회 후 함께 갔던 남산 공원에 가고 싶어졌다. 무계획적 인간은 무책임하고 즉흥적인 선택을 즐기기로 마음먹는다. 상수역의 좁은 2번 출구로 들어갔다. 순간 이동을 하는 마법사가 지하 세계 포털로 장소를 유영하듯 목적지를 바꿨다. 6호선 약수역에서 환승을 한 번 하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01B번 버스를 기다리다 근처에 멋진 돌다리가 보여서 기웃거렸다. 수표교라는 문화재 표시를 보고 그제야 아뿔싸 싶었다. 이게 그 수표교라니.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다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품을 뽐내고 있었다. 그 다리 위에 잠시 두 발을 꼿꼿이 붙이고 서 보았다. 그와 동시에 장충동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01번 버스가 오는지도 체크했다. 벅찬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손발이 간지러웠다.
남산 공원 꼭대기 지점에서 시작해 나선형으로 내려오며 적당히 시내로 빠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필 받아서 걷다 보니 강아지 꼬리 모양처럼 동그랗게 말린 모양의 산책로를 다 걸었다. 이내 경적소리가 들리자 시내권에 다다랐음을 깨달았다. 이후에 스마트폰 어플로 확인해 보니 만보 이상 걸었다.
허기가 져서 돈가스 거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적당히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정작 사 먹은 건 산채 비빔밥이었고 반찬으로 돈가스 몇 조각이 달려 나왔다. 두둑이 채워진 배 속을 꺼트릴 겸 명동 방향으로 걷다가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소품샵에 들어가 열과 성을 다해 구경을 하다 빈 손으로 나왔다.
뜨거운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에 명동 인파 속으로 몸을 넣었다. 포엠이라는 카페에 들어가 계획과 달리 파르페를 주문했다. 디저트가 유명한 곳이라 테이블마다 와플과 빙수가 올려져 있었다. 한 사람이 4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게 어쩐지 죄송스러워 최대한 빠르게 먹었다. 매장을 빠져 나온 시간은 오후 6시가 채 되기 전이었고 벌써 해는 져 있었다.
노점 거리에서 빠져나와 역 쪽으로 걸었다. 돌이켜 보니 반나절 안에 한 일들이 너무 많아 나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동시에 마음에 드는 산책 코스를 발견해서 좋았음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소 업로드하는 <커피 생활> 시리즈 글의 성격과 다른 글을 적어 봤다. 카페를 방문한 어떤 날의 기록을 시간대별로 나열하는 글. 그런 글을 한 번쯤은 적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