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규범 - 상수동
서울 마포구 독막로 19길 32 1층
키워드: 특색 있는 인테리어, 작은 공간, LP 청음
도덕과 규범은 지금 터를 옮겨 홍대 근처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 이전에는 인적이 드문 신수동 주택 가운데에 첫 가게를 열었다. 범상치 않은 가게 이름과 내부 인테리어 사진을 SNS에서 접하고 일종의 호기심을 자극당해, 어느 더운 여름날 이곳을 방문했다. 자리를 옮기기 전에도 현 홍대점과 비슷하게 4-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5-6개 남짓이었고 그마저 전부 간이 의자를 무심하게 던져 놓은 듯한 게 전부였다.
'이런 곳에서도 장사가 돼?'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비집고 앉을자리가 겨우 났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테이크아웃을 해서라도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음료를 주문했다. 도대체 뭐가 이곳의 매력 포인트인 걸까?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며 머릿속에 드는 의문을 정리했다. 그리고 차차 그 인기의 이유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어쩐지 공사판을 연상하게 하는 인테리어는 배관 파이프와 천장 미장 처리를 노출시킨 데 기인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돈되지 않고 지저분한 느낌이 아닌 하나의 미감으로 통일감 있게 꾸며둔 느낌. 공사판이 아닌 인더스트리얼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던 중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도르래가 눈에 띄었다. 위에서 뭔가를 쭉 잡아당기니 빗자루가 아래로 내려왔다. 헬스장에서 웨이트 할 때 로잉 머신 줄을 잡아당기는 쉬익 소리가 들리더니 빗자루가 등장해 흩날린 커피가루를 착착 정리했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퍼포먼스를 관찰하며 '과연 남다른 공간이군' 하는 생각을 했다.
수도 없이 많은 커피집이 서울에 널려 있지만 그 망망대해 안에서도 유독 범상치 않은 외딴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론리 아일랜드'라는 이름이 붙은 외딴섬에 불현듯 떨어진 감각. 왜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외롭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외딴섬의 카페다.
그곳에 가면 범상치 않은 도르개가 있고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고 향긋한 커피 향이 있다.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침샘이 폭발하는 듯한 시너지가 터져 나온다. 공간과 사람이라는 그리고 커피라는 매개가 맞물려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원두는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디카페인 중 선택 가능하다. 과테말라는 워시드 원두, 에티오피아는 내추럴 원두로 준비되어 있다.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과테말라 원두를 선택해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과테말라는 테이스팅 노트가 초콜릿, 아몬드, 바닐라, 브라운 슈거라고 적혀 있다. 확실히 라테와 어울리는 원두 블렌딩이다. 어찌 보면 우유와 블렌딩 되었을 때 가장 어울리는 종류의 원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하게 다크 하지 않고 기름진 맛이 아니라 더 좋았다. 우유와 어우러졌을 때 풀잎처럼 산뜻한 목 넘김을 자랑한다.
다름에 방문한다면 에티오피아의 내추럴 원두를 먹어보고 싶다. 오틀리 옵션으로 아이스 라테도 궁금한 조합니다. 메뉴판 상단에 있는 내일의 커피도 궁금한 메뉴다. 매일 다른 커피로 준비된다고 하니 당일에 어떤 원두를 맛볼 수 있을지 기대하며 방문하는 재미가 있다. 가격도 합리적이라 마음에 든다. 길게 머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두 잔을 마시고 싶다. 첫 번째 잔은 라테로 워밍업을 한 이후에 두 번째 잔은 내일의 커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
커피와 일면식 없는 단어의 조합으로 상호명을 지은 점부터 이 가게는 확실히 손님의 이목을 끈다. 출판사 상호라고 해도 좋을 법한 무게의 이름이다. 더군다나 한 번이라도 이 공간에 가보면 누가 봐도 개성 진한 주인들이 커피에 대한 애정으로 꾸려가는 곳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매번 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거나 오래 머물 수 있는 안락함을 보장하기 어렵지만, 그 모든 장애 요소를 상쇄하는 마성이 있다. 그 마성에 취해 이따금 생각나는 가게. 그렇게 용기 있는 발걸음을 해도 '역시 오길 잘했어' 하는 확신의 공간이라고 적고 싶다.
참, 적는 것을 깜빡했는데 턴테이블로 음감이 가능해서 LP 청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근사한 조건은 없을 듯하다. 재즈와 스윙, 보사노바 등의 엘피 라인업이 갖춰져 있다. 특히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피 한잔을 즐기며 스윙까지 즐길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