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Yay - 대흥동
서울 마포구 대흥로 21길 11 1층
키워드: 디저트 카페, 귀여운 분위기, 뜨개질 오브제
오늘은 조금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디저트 YaY를 소개하고자 한다. cafe Yay는 기분 좋은 디저트류를 파는 카페다. 자가로부터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데 예상과 달리 첫 번째 방문했던 날은 이 동네에 이사 온 지도 약 4년이 지난 이후에서였다.
길을 지나다니며 '이런 곳에도 카페가 있구나' 하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문고리를 당겨 본 것이다. 동네에 있는 가게는 예상외로 시간을 들여 잘 가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늘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노크를 하고 문 안쪽에 있는 상대와 마주하는 기분이다.
이곳은 디저트가 특화된 카페다. 방문 시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 나온 디저트는요...' 하며 수줍게 말을 걸어온다. 주인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처음 방문한 손님이든 자주 방문하는 손님이든, 이곳은 디저트에 공을 들이는 곳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디저트 라인업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듣고 메뉴판으로 눈길을 돌리면 자연스레 커피 메뉴로 시선이 옮겨진다. 디저트를 주문하는데 커피가 빠질쏘냐. 어떤 조합으로 두 메뉴를 구성할지 머릿속에 페어링을 그려 본다. 케이크와 파이, 구운 과자 등의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방문 전에 어느 정도 마음을 먹고 '오늘은 이걸 먹어봐야지' 정하지 않는 이상 난감해질 수 있다.
내가 이 가게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라임 파이다. 지금은 판매하고 있지 않는 계절 메뉴지만, 올해 여름에 가장 즐겨 먹었다. 라임의 향이 잔뜩 머금은 크림이 파이 위에 올라가 있다. 진한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와 조합이 발군이다. 라이트 한 식감이라서 그런지 먹고 난 뒤에도 죄책감이 덜하다.
올해 여름은 개인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혈육이 말도 없이 YaY의 파이를 불현듯 사다 줬다. 그때 혼자 이렇게 읊었다. '아, 죽고 싶지만 파이는 먹고 싶어'. 베스트셀러의 에세이의 제목이 떠올랐다. 인생은 지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살리는 사람이, 파이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라임 파이가 있었다. 그 이후로 이 파이를 보면 '날 살리는 것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디저트 카페라서 커피에 대한 일말의 기대 없이 주문을 한다면 의외의 맛에 놀랄지도 모른다. 적당한 감도의 커피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디저트와 합이 훌륭하다. 특징이 있는 원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모난 곳이 없이 전반적으로 무난한 밸런스를 자랑한다. 특히 우유가 들어간 라테나 플랫화이트가 마음에 들었다. 고소한 원두의 향미가 마지막 한 입까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다수의 디저트를 내세워서 파는 카페들은 '커피는 이 정도만 해도 괜찮지 않나' 싶은 주인의 속마음이 보여서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커피에 조금 더 신경 써 줬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곳이 많다. 대체로 음료와 디저트의 합을 고민하지 않고 한쪽에만 힘을 실은 결과일 거라고 본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결국 손님을 다시 방문하게 만드는 건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디테일이다. 그리고 카페라면 응당 메뉴 디테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많은 것들은 밸런스에서 승패가 갈린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음료와 디저트를 홀로 즐기러 방문할 수 있는 작은 카페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지. 그 위로에 대해 나는 한 시간 이상 떠들 수 있다. 물론 소리 내어 떠들라고 하면 중간에 목이 아파서 그만둘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살리고 있다고.
아지트라는 단어의 어원은 러시아어 '아기트'가 구개음화된 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소련에서 민중을 상대로 사상교육과 선동을 담당하는 교육 기관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북한과의 전쟁을 거치며 근거지를 일컫는 말로 아지트를 차용한 것이다. 사상을 주입한다는 어원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거점'이라는 단어로 의미가 굳혀진 것이다.
아지트의 변질된 의미만큼이나 결국 인간이란 거대한 사상보다 마음 붙일 수 있는 거점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닐까. 인류와 혁명, 사상과 역사와 같이 큰 덩어리를 등지고 당장 죽고 싶은 개인적인 충동이 들어도 결국 달콤한 한 입에 무너져 내려 버리는 창백한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