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친구 - 수송동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키워드: 핸드드립, 오래된 가게, 로스터리
백발의 노인이 지키는 가게가 주는 묵직함은 세월을 버틴 특유의 기품에 의해 빛이 난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커피친구’는 15년 이상 명목을 유지해 온 로스터리이자 핸드드립 전문점이다. 15년이라는 세월은 커피 전문점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버티는 축이 되어 준 갖은 요소가 힘을 더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하기에 ‘버텼다’는 말은 오래된 가게를 두고 말할 때 기필코 서두르는 표현이 아님을 안다.
커피친구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오피스텔 건물의 1층에 위치하고 있다. 정확한 내막을 알고 있지 않지만 가게를 한차례 이전하며 이전에 운영하던 가게를 이곳으로 옮기신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가게 문을 열면 바를 지키고 있는 백발의 주인이 손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주인 내외는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각자 일을 분담하여 착착 처리하고 있다.
자리에 앉으면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벨벳 커버의 어쎈틱 한 메뉴판을 가져다주신다. ‘아메노히커피'를 다룰 때 한차례 얘기한 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정통의 메뉴판을 좋아한다. 어딘가 모르게 이런 벨벳 커버의 메뉴판을 받으면 마음 한편이 싹 씻기는 기분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두꺼운 메뉴판의 한 면을 넘길 때마다 수십 개의 원두가 눈앞에 펼쳐진다.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달의 추천 메뉴가 있어서 안심이다. (추천 메뉴를 마셔 봤을 때 후회한 적이 없었기에 나름 객관성을 띄는 듯하다.)
주로 케냐 원두를 메뉴판 앞쪽에 배치하여 추천하는 듯한 인상이다. 종종 케냐는 산미가 너무 강하거나 밸런스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있어서 선택하는 데 있어 좀처럼 과감해지지 못하고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의 케냐 원두는 다르다. 과하지 않은 산미와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간 먹어본 케냐 중 단연 일품이다. 주인이 자신 있게 메뉴판의 정면에 큰 글씨체로 이달의 원두로 추천하는 이유를 단번에 납득할 수 있었다.
전통이 있는 커피 전문점답게 비엔나커피도 취급하고 있다. 내점 했을 때 주위를 힐끗거리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비엔나커피가 종종 보인다. 기분 좋은 모양을 한 크림이 앤틱 한 잔에 담긴 원두커피 위에 올라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고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메뉴다. 어딘지 모르게 콧대 높아 보이는 인상이다. 양갈래 머리를 하고 빳빳한 셔링 셔츠를 입고 있어서 말을 걸기는 어려운 인상이지만 막상 용기를 내어 한 마디 걸어 보면 실은 성격이 수더분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일 것만 같다.
바 건너편에는 핸드드립에 필요한 각종 포트와 원두가 보인다. 문외한이 보더라도 이곳은 핸드 드립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주인장은 연신 포트에 물을 끓이며 핸드 드립 주문을 받아낸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날쌘 내야수의 느낌은 아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인다기보다 본인만의 리그를 즐기다 날아들어오는 공을 잽싸게 포획하는 외야수에 가까워 보인다.
손님의 니즈는 다양하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원두는 다각화된 입맛을 만족시키기에 최적화된 서비스로 비친다. 다만 개인이 선택한 원두가 선호하는 테이스팅 노트를 구현해 낼 수 있을지는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할 것이다. 선택과 구현 그리고 결괏값 세 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일은 그야말로 당첨과 낙첨으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택의 기로는 원두뿐 아니라 추출 방식, 핫과 아이스, 베리에이션과 논베리에이션 등 다양한 갈림길에서 나뉜다. 나는 따분한 인간인지라 뭐가 되었든 클래식을 선호하는 편이고 대부분의 경우 따뜻한 드립을 선택하게 되지만 말이다. 가끔 초코 시럽이 왕창 들어간 베리에이션 음료를 과감하게 시키는 지인과 내점 할 때면 내가 누리지 못하는 선택의 결과물을 구경한다.
기회가 된다면 맛을 볼 때도 있다. 거리낌 없는 사이라면 음료를 나눠 마셔 보는 호사를 누린다. 다만 입에 잘 맞는 경우는 드물다. 맛보기용으로 한입 얻어먹는 데 만족할 뿐 온전히 즐기기에 다양한 베리에이션 음료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커피 친구의 정문 발치에는 작게나마 고양이들이 쉬어가는 공간이 외부에 마련되어 있다. 주인 내외가 사료를 챙겨 주는 것으로 보아 거의 절반쯤 그곳에 머물고 때때로 산책을 즐기러 나가는 듯하다. 묶여 있지 않고 원하는 시간대에 머물며 사람의 손을 타는 고양이라. 참 쿨하면서도 이해관계가 확실해서 마음에 든다.
카운터에 앉아 오고 가는 손님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고양이의 얼굴을 나 역시 구경한다. 서로가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관찰당하는 관계성을 단번에 구축한다. 확실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버텨낸다. 세상의 버티는 존재는 모두 아름답다.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