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by 이강

10. 토끼


원래 우리 집 정원은 동네에서 소문난 화단으로 잡초와 적당한 잔디밭과 자잘한 나무와 큰 나무가 조화를 이룬 큰 화단이었다. 그 자랑스러운 화단이 시간이 지날수록 풀이나 꽃은 볼 수가 없고 키 작은 나무에 잎사귀조차 없는 앙상한 나무로 변해갔다.

망할놈의 토끼가 문제다. 초록빛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고 오로지 흙덩이만 볼록볼록 튀어나오고 여기저기 구덩이가 흉하게 파여져 있다. 구덩이 위에서는 토끼들의 싸움이 끝이 없다.

가관이다. 공중에서 회전하며 뒤발질로 가격하며 소리까지 질러대는데 허구헛날 쌈짓거리다. 동화책 속에 나오던 하얀토끼의 이미지는 몽땅 사라졌다.
처음 몇 마리였을 때는 토끼장 속에서 과일 껍질을 먹는 토끼의 입 모양에 반해 하루종일 토끼 생각이었는데 토끼수가 점점 많아지자 토끼는 좁을 토끼장을 탈출하고 마당 여기저기에 자기만의 집을 만들었다. 오빠는 토끼를 잡아 토끼장에 넣는 수고로움을 포기하고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고 넓은 마당에서 토끼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늘어나는 숫자에 비해서 마당에 잡초가 부족하자 토끼들은 나무타기를 시도하며 잎사귀를 모조리 먹어 치우고 우리는 토끼풀을 뜯어 바치느라 지긋지긋하게 풀을 찾아다녔다.

이 문제의 제공자는 오빠다. 한두마리를 키워 재미를 보더니 점점 욕심이 생겨 우리에게까지 하루의 할당량을 정해주며 자루에 토끼풀을 채워 오라 명령을 한다. 징그럽게 갖가지 술수를 써대며 집요하게 조르는데 당해 낼 장사가 없다.

그렇게 징글징글맞은 시간이 지나 장마철이 되자 큰 사건이 일어났다. 비가 억수같이 와서 마당이 물이 차오르는걸 모르고 밤새 쳐 자던 오빠는 아침에 대성통곡을 했다. 97마리의 토끼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죽은 것이다. 나는 울지 않았다. 토끼가 분명 도망갔을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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