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by 이강

11. 주사

주사쇼크가 있어서 저 학년 때는 진료 후 주사를 맞고 병원 문 앞에서 쓰러지는 일이 간간이 있어 엄마가 병원 선생님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 사실 주가쇼크가 있다는 것은 몇 번 쓰러져야 아는 일이고 그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주사는 죽기보다 싫다.

겁이 많아서 인지 엄살이 심해서인지 학교에서 뇌염주사를 맞는 날이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다. 주사 맞는 지정된 교실 근처부터 병원냄새가 풍기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옆에 선 간호사 언니의 검정 줄무늬 간호사 모자의 움직임이 보이면 두근두근 죽을 맛이다. 간호사 모자를 한번만이라도 써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모자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을 볼 것인가 눈을 감을 것인가 고민하고 앞 친구의 얼굴을 보며 간접적으로 주사체험을 한다. 친구의 표정에 따라 나의 고통의 정도가 정해진다. 의사 선생님은 표정 없는 얼굴로 거침없이 바늘을 내려 꽂는다. 뻐근하고 찝찝한 이물질이 들어가는 기분은 속을 거북하게 만든다.
예방접종이 이 정도 인데 불주사를 맞을 때에는 곡소리가 났다.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앞서 주사를 맞은 애들의 표정은 알 수 없는 표정이고 영웅담을 안 들어보려고 계속 딴 생각을 하고 중얼거려도 다 들린다. 들리는 말로는 주사기에 불을 달군다고 하는데 듣는 순간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마른 입술을 손으로 쥐어뜯기 시작한다. 할 말이 없어진다. 불로 달궈진 주사기는 얼마나 따가울 것 인가 안 그래도 아픈 주사기에 불까지 벌겋게 지진다니 집에 간다고 떼쓰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드디어 주사를 맞는 장면이 훤히 보이는 곳까지 다가왔다. 역시나 알코올램프에 파란불이 꼿꼿하게 위엄을 품고 의사 선생님은 정확하게 불 위에 주사기를 들이댄다.

두 눈으로 봤다. 끔찍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불주사는 진짜다.

의사 선생님에게 두손 모아 빌고 싶은 마음이다. 떨리다 못해 손끝이 축축해진다. 의사 선생님은 약간 뒤쪽으로 돌아 서게 하고 주사 자리를 찾는 듯싶더니 흉터가 생길지도 모르니 뒷부분에 놓는다고 말하고는 살을 꼬집듯이 잡는다. 주사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안보이지만 이쯤이면 불로 지지는게 분명한 타임이다. 차라리 머리를 땅에 지쪄 죽는 편이 낫지 왜 이런 주사를 맞아야하는지 원망을 하는 순간 주사기가 들어간다. 뜨거운 주사가 살 속을 파고들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질 줄 알고 비명을 지르려던 순간 그냥 주사랑 똑같다. 안 뜨겁고 안 아프다. 생각보다 많이 긴장해서인지 속만 울렁거릴 뿐 별일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만에도 세상이 무너지듯 참담했는데 지나고 나니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왜 호들갑을 떨었는지 내가 미쳤지. 겪어보지도 않고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해 가려고 했으니 만일 피해갔다면 평생동안 불주사에 대한 헛된 망상으로 살았을 텐데 하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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