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건너 방
작은방에 들어선다. 진한 달달함이 도는 윤기 나는 색감 속에 혼자 선다.
동생들과 무리지어 놀다가 이 방문이 눈에 들어오면 잘 놀다가도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혼자서 느닷없이 신발짝을 내동댕이치고 뛰어든다. 햇살 가득한 마당에서 한나절 보내다가 갑자기 들어선 어두운 방안은 할머니가 아끼는 밤꽃 꿀단지 속이라도 들어온 듯 거무스름한 갈색으로 내딛는 발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색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부릅뜨고 두리번거리며 잠시 기다린다. 이방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보물들이 늘어난다. 방안구조는 작은 직사각형에 앞뒤로 똑같은 크기의 창호지로 바른 방문이 마주보고 있고 앞문은 앞마당을 향하는 마루에 있어 들락날락거리는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하나는 뒤곁을 향하고 있는데 뒷문은 어쩌다 막내삼촌이 딱 한번 나가는 것을 봤을 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왼쪽 벽면 중간에 안방으로 통하는 문이 또 하나 달려 있다. 그 문은 누군가가 문이라고 일러주기 전에는 문이라는 것을 눈치 못 채게 그냥 벽에 사각형으로 금을 그어 놓은 듯 성의 없게 삐뚤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알쏭달쏭함이 숨겨진 이방은 한여름 대낮에도 무섭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어두움으로 또 다른 상상을 자극한다. 손님이 많은 날에는 손님방으로 사용하고 곡식이 많은 가을에는 곡식창고로 사용하다가 메주를 띄우거나 술을 만들 때는 냄새나는 방으로 사용한다.
어느해엔 노오란 콩나물 대가리가 수북하게 올라온 시루가 다라에 걸쳐있을 때도 있었다. 콩 비릿한 냄새에 노오란 콩대가리가 어찌나 빡빡하고 예쁘던지 틈만 나면 몰래몰래 콩대가리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확인하고 양재기로 물을 줄때마다 콩나물 썩는다고 그만 주라는 할머니의 귀신같은 목소리가 깜짝 놀라곤 했다.
건너방안에 있는 세 개의 방문 중에 뒤꼍을 향하는 방 문 앞에는 재봉틀이 세워져있다. 재봉틀 발판을 밝으면 빡빡하게 돌아가는 자전거 같아 발판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앞뒤로 흔들거리며 어렵게 어렵게 엉덩이로 페달을 굴러보지만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이제 재봉틀 앞부분에 삼각형으로 달려있는 서랍을 열어볼 차례다. 서랍인줄도 모르고 만져보다 툭하고 앞으로 벌어진 서랍 속에는 아기자기한 색상의 색실과 골무, 실패, 쪽가위, 단추, 옷핀 같은 오만가지들이 올망졸망 만지기 아까울정도로 귀엽다. 누가 이렇게 오래되고 빛바래고 손때 묻은 오방색의 작은 것들만 모아 놨는지 동화책 속에서만 상상하던 천사의 물건이 따로 없다. 최초로 발견한 서랍 속 보물! 만지기도 아까운 것 들을 바라보기만하고 닫아 두었다.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이고 동생들에게도 비밀이다. 그 후로 할머니 댁에 가면 건너 방 재봉틀 서랍 속부터 열어보고 그것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여전히 예쁜지 확인하며 항상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그저 보기만 해도 힘을 주는 것이 건너 방에 수두룩하게 모여 있으니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