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방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은 시간의 흐름조차 망각하게 하는 특별한 곳이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이른 아침 제일먼저 눈을 뜬다.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가셨는지 넓어진 이부자리 위로 몸을 쭉 뻗고 종이로 펴 바른 울퉁불퉁한 천정을 바라보며 움푹 파이고 쪼글거리는 곳 찾기 놀이를 한다. 누런 천정에 아슬아슬 걸려있는 늘어진 형광등 줄에는 점점이 찍힌 파리똥과 오래된 방안 공기에서 쥐어짠 기름기로 끈적여 보인다. 천정 모서리 모서리는 날카로운 삼각자 형태가 아닌 반원형으로 벽지가 우글거린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방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아랫목 바로 윗부분 큰 다락은 할머니의 보물창고이며 과자, 사탕, 떡, 금은보화가 가득해서 말만하면 무엇이든 나오는 곳으로 높고 어두워서 들여다 본적이 없지만 할머니는 우리들을 조르르 나이별로 줄을 서게 하고 사탕을 하나씩 입에 넣어주든 양손바닥에 과자 한주먹씩 나누어주는 곳이다. 할머니 다락 오른쪽으로 달력이 걸려있고 그 옆으로 작은 다락이 하나 더 있다.
작은 다락 속에는 반짇고리 바구니, 윷놀이, 화투, 필요할 때 쓰려고 모아둔 달력종이며 신문지가 나오며 그 다락문 바로 오른쪽에는 할머니 댁의 유일한 거울이 걸려있다. 바로 옆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한복 입은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으며 여기부터는 환갑잔치사진이며 가족사진들이 줄줄이 걸려있고 손자손녀의 백일잔치며 돌잔치, 고모, 삼촌들의 결혼사진이 빼빽하고 오래된 흑백사진 속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청춘이다. 노란원피스를 입고 현충사에서 오빠랑 찍는 사진은 내가 봐도 예쁘다. 이부분은 가족 앨범 벽이다.
사진 옆에는 오래 돼서 뿌연 해진 쾌종시계에서 성의 없이 냄비뚜껑을 두드리는 듯한 ‘땡땡댕’소리가 난다. 괘종시계 위에는 작년에 선물한 어버이날 카네이션 꽃과 할아버지 아주까리 머릿기름 병이 숨겨져 있다.
그 아래로 건너 방으로 통하는 문이 보이는데 비밀의 문으로 벽인지 방문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 방문이 할머니방의 숨은 보석이다. 창호지나 나무로 된 문이 아니라 방 벽지로 발라놓은 문이라서 모르는 사람이라면 벽인지 문인지 구분을 못한다. 벽에 두꺼운 연필로 금만 그어 놓은 듯한 비밀 문을 밀면 건너 방이 슬며시 보이며 유독 문지방이 높은 이 방을 혼자 힘으로 들어가려면 8살 정도 되서야 가능하다. 그것도 다리하나를 걸쳐 앉았다가 또 다른 다리를 한손으로 걷어 올려야 건널 수 있고 건너다 말고 문지방에 앉아서 말 타기 놀이를 하거나 발을 짚고 일어서기라도 하면 어른들 중 누군가가 문지방을 밝으면 지붕 무너진다고 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이른 아침 이불속에 누워 방안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게으름을 떠는 맛은 깨소금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