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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 Jul 30. 2022

먹걸리

   

막걸리     

 할머니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받으러 간다. 옆집 구판장에 어른이 안 계시면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 손자 녀석이 머슥하게 나와 어둑어둑한 광문을 열고 땅속에 묻은 항아리 뚜껑을  연다. 열자마자 시큼거리는 냄새를 풍기는 하얀 막걸리가 막걸리 답지 않게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낸다. 어린 녀석이 무릎을 꿇고 앉아 긴 국자로 막걸리를 담아주는데 손놀림이 어찌나 야무진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작은 주전자에 담아준다. 어린 마음에도 요놈은 크면 성공할 것 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크름한 냄새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하얀색감이 맛있어 보여 오는 길에 주전자 뚜껑에 몇 번을 따라 마신다. 달달한 맛에 이러다가 다 먹을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끝부분에서 쌉쌀한 쓴맛이 올라오는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말도 웃음도 없는 할머니가 막걸리를 열무김치와 두 사발 마시더니 발그스름한 볼을 하고 맹맹한 콧소리를 내며 말이 많아지고 웃기도 잘한다.  술챈 할머니가 좋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할머니가 막걸리 몇 잔에 무한정 앉아서 오만가지 말을 쏟아 내니 이 시간은 손녀들과 대화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 받는 시간 이었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막걸리는 요물이다. 할머니는 밥공기에 뽀얀 막걸리를 반쯤 따라 넣고 설탕을 듬푹 넣어  단맛도 아니고 쓴맛도 아닌 막걸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건네준다. 아따! 기분도 좋겠다. 괜시리 술 취한 척을 하면서 할머니를 위해 마당을 돌며 덩실덩실 비틀비틀 춤을 춘다. 할머니도 웃는다. 나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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