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봉숭아
여름이면 봉숭아 물을 두 세 번은 들인다. 잘 들여지는 해에는 두 번만 들여도 검붉은 색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흐리멍텅한 김칫국물 색이다. 봉숭아꽃을 보면 만일을 제쳐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꽃과 잎사귀를 딴다. 붉어질 손톱을 생각하면 어깨춤이 절로 쳐진다. 곱게 다져놓은 꽃잎과 잎사귀를 손톱위에 밥숟가락에 밥을 올려놓듯 욕심내어 수북수북 올려놓고 비닐로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맬 때마다 아까운 꽃물이 발등위로 무릎위로 뚝뚝 떨어진다. 손가락에 꽃 뭉치를 달고 빠지지 않게 조심하며 기다리다 보면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해져 신경이 쓰이는데 동생 손에 붙어 있던 봉숭아는 30분도 안 되서 절반이 도망갔다. 관심이 없는지 손이 저려서인지 동생은 도망간 봉숭아를 아까워하지도 않는다. 짧은 시간에도 손톱은 김치국물 색으로 물들어 있고 손가락 끝부분은 쪼글쪼글 불어 있다.
저녁에 할머니가 밭에서 오면 봉숭아 노래를 불러야겠다. 할머니 표 봉숭아는 검붉은 색이 특징으로 봉숭아꽃과 잎사귀를 햇볕에 꾸들꾸들하게 말려 사용한다. 방학이면 두 번씩 손톱에 물들여주는 할머니는 언제나 잠자리 들기 전에 손톱에 봉숭아를 묶어 주며 참하게 자는 사람은 봉숭아가 손가락에 진하게 물이 들고 험하게 자는 사람 손가락에 연하게 물이 들어 예쁘지 않다며 누가 험하게 자는지 살펴본다 하며 손가락에 일일이 봉숭아를 묶어준다. 우리가 만든 봉숭아처럼 꽃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수북수북 올려놓는 것도 아닌데 아침에 봉숭아 뭉치를 벗겨보면 어찌나 진하게 물이 들었는지 검은빛이 돈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가 남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첫사랑이 이루어졌으면 난 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