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문밖

강낭콩

by 이강

4. 강낭콩

안개가 자욱하다. 부엌에서 할머니는 웬 안개가 이렇게 많이 꼈냐고 혼잣말을 한다. 아직은 이불속에서 뒤척뒤척 한잠을 더 자야하는데 할머니의 말에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아무래도 보통 안개는 아닌듯하다. 평소에 말 없는 할머니가 혼잣말을 한다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앞산은 말할 것도 없이 잘 보이던 큰 나무도 안 보이고 담장만 겨우 보일 뿐 성정동 집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다. 마루에만 앉아 있다가 들어갈 생각인데 이걸 두고 방에 들어가기 아깝다. 할머니는 군불을 때려는지 잔 나뭇가지를 똑똑 부러트리는 소리를 낸다. 안개 속을 걷고 싶어 마당으로 나가 빙 빙 돌며 어디까지 보이는지 외양간, 지붕, 화단, 담장을 두리번거리니 발등만 선명할 뿐 사방이 사라지듯 보일락 말락 거리고 방금 나온 방문도 분간이 안 간다. 뿌연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다 말고 밭에 가서 할아버지한테 강낭콩을 받아 오라한다. 담장 밖 밭인데도 안 보일까봐 겁이 나서 살금살금 걷는데 대문 밖을 나가보니 마당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걷는 만큼 보일 것은 다 보인다. 아래로 비스듬히 뻗은 넓은 콩밭에도 안개가 어찌나 짙던지 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끝부분은 보이지도 않고 방학 내내 먹으려고 갯수를 세다 말았던 많던 옥수수도 몇 개 안 보인다. 두리번두리번 찾아봐도 할아버지는 안보이고 혼자만 덩그라니 서 있는 것 같아 무서운 마음에
“할아버지 할아버지”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바로 코앞 콩밭 가생이에서 할아버지가 몸을 반쯤 일으킨다. 한 손에 국 대접을 들고 콩을 따고 있는 할아버지는 콩 대접을 할머니한테 주라고 쏙쏙 빠진 자줏빛 강낭콩을 내민다. 예쁘다. 그동안 먹던 강낭콩 밥은 이렇게 아침마다 할아버지가 따오는 줄 몰랐다.

“왜 이리 일찍 일어났어? 더 자야지”

웃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자 안도감에 기분이 좋아져 안개로 가득 찬 콩밭 사이 길을 괜히 달려본다. 콩잎에서 차가운 이슬이 튄다. 바지며 허리춤까지 이슬이 튀어 옷이 다 젖었고 발목과 발은 비에 젖은 것처럼 물기에 흙에 뒤범벅이 됐다. 자줏빛 점이 촘촘히 박힌 강낭콩이 쏟아지지 않게 한손으로 대접을 덮고 콩밭을 나온다. 할아버지는 콩밭 속에 또 숨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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