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문밖

빨래터가는 길

by 이강

5. 빨래터가는 길

동네 사람들은 여기에 모여 빨래를 한다.

그곳은 할머니 댁에서 나와 돌담을 따라 오른쪽으로 향해있다. 담벼락 아래로 봉숭아꽃이 너절너절 늘어져 피어있고 꽃길을 깨금발로 걷는다. 빨간 꽃이 나오면 잠깐 쉬고 하얀 꽃이 나오면 잠깐 쉰다. 밤이면 봉숭아꽃 돌담사이에서 반딧불이 엉거주춤 날아오르는 자리를 힐긋 보고 지나간다. 담을 지나면 영희언니 친구인 꽃분이 언니네 대문이 나오는데 웃는 얼굴이 귀여운 만큼 목소리도 어찌나 간들어지는지 할머니 댁 담 너머로 ‘까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양 볼떼기에서 입가 쪽으로 볼펜으로 콕 찍은 듯한 작은 보조개가 신기해서 언니가 놀러오면 그것만 쳐다본다. 꽃분이 언니는 막내삼촌을 좋아해서 삼촌이 있으면 억지로 눈웃음을 치며 보조개를 연신 만들며 삼촌을 곁눈질 한다. 그런 언니가 재밌어서 또 쳐다본다.

마당가득 이것저것 늘어놓기 좋아하는 꽃분이 언니네 집 앞에 서서 잠깐 마당을 구경한다. 넓은 마당 가생이로 뭔 물건들이 그리도 많은지 집안물건은 죄다 마당으로 나온 듯 종류도 다양하다. 요강, 녹슨 분유통, 장화, 부서진 서랍, 흙 속에 쳐 박흰 양은냄비, 둘둘 말린 비닐뭉치, 뒤엉킨 농기계더미가 구석구석 해마다 늘어나고 처마 밑에 나란히 서있는 빈병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반쯤 넘게 차여있고 벽이란 벽에는 큰바가지 작은 바가지 낫이며 호미, 곡괭이, 쇠스랑과 녹슬고 알 수 없는 오래된 무언가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어찌 보면 동화 속에 나오는 요술 약을 만드는 마녀의 실험실 같다. 꽃분 언니 네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저 아래쪽으로 빨래터가 보인다.

왼쪽으로는 벼가 허리까지 올라온 논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구판장을 지난다. 구판장을 지나면 양쪽으로 벼가 가득한 논 사이 길을 걷는가 싶을 때 논을 가르는 개울이 나오고 그 개울이 빨래터다. 빨래터 위쪽으로 난 다리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빨래를 빠는 동네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도 보통은 아니다. 작은 돌멩이라도 통통 물속으로 던지는 맛도 깨소금 맛이다. 옆으로 길게 누워 빨래 빠는 손을 가만히 보며 누가 무슨 빨래를 빠는지 하나하나 살펴본다. 마른 빨래를 흐르는 물에 적시며 아시빨래를 빨다가 비누질을 하며 본 빨래로 들어갈 때 두부만한 비누를 하나씩 꺼내 빨래에 문질러 바른다. 여러 번 뒤집어 비누가 골고루 발라진 빨래를 야무지게 비비고 주무르다 이만하면 다됐다 싶을 때 다라 속에서 몽둥이를 하나씩 꺼내 빨래를 사정없이 때려 빤다. 방망이가 공중으로 올라가는 사이에 한손으로 빨래를 재빠르게 뒤집기 하는데 그 박자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머뭇거림 없이 공장에 돌아가는 기계처럼 보인다. 공중으로 올라간 방망이가 빨래로 내려올 때 손이라도 다칠까봐 실눈을 뜬다. 할머니는 떨어진다고 다리에서 내려오라고 뭐라 뭐라 하지만 다리 위에 누워서 바라보는 빨래터의 풍경은 스르르 잠까지 오게 편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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