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문밖

개울가 목욕

by 이강

6. 개울가 목욕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12살 때이다.

달빛이 없는 여름밤이면 동네여자들이 목욕을 하러 개울가로 간다. 언젠가는 달빛조차 없던 깜깜한 밤에 고모들과 몇 번 목욕하러 따라갔다. 나이가 너무 어리면 어두워서 데려가지 않는데 12살이 되니 고모와 언니가 개울목욕에 끼워준 것이다.

가는 길에는 후레쉬를 들고 가지만 멀리서 개울가가 보이면 후레쉬 부터 끄고 좀 걸어야 한다. 깜깜한 밤이라도 조금은 보일법한데 안보여도 이렇게 안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차라리 눈을 감고 걷는 것 같아 막내고모 손에 매달리듯 의지하고 걸었다. 이미 개울가에는 여러 명의 여자들 목소리가 들렸고 작은 소리로 웃어가며 소곤소곤 거렸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망을 봐준다고 다리 위에 올라가서 막내고모가 왔다갔다 망을 본다. 달빛도차 없는 밤이라서 누구의 얼굴인지 하나도 분간이 안 간다. 바가지로 물 뿌리는 소리 첨벙첨벙 물속에 머리를 헹구는 소리 이 밤에 빨래 빠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비누를 밝았는지 미끄러운 돌바닥에 철푸덕하고 넘어지면서 ‘엄마야’ 비명을 지른다. 돌바닥에 벌거벗고 넘어졌으면 분명 많이 아플 텐데 아프지도 않은지 웃음소리만 '까르르 깔깔깔' 퍼진다. 몇 명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웃음이 늦게 터지는 여자들까지 합하면 한 두 명이 아니고 열 명 안팎은 되어 보인다. 깔깔거리고 웃겨죽겠다며 순간 개울가가 웃음바다가 되고 넘어진 여자는 아프지도 않은지 비누가 없어졌다고 비누부터 찾는다. 넘어지는 소리로 봐서 바로 앞부분에서 넘어진 것 같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후레쉬를 켰는데 세상에 순간적으로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비명을 지르고 불을 끄라고 손짓한다. 바닥을 향한 후레쉬는 앞에 앉아있던 여자의 엉덩이를 비추었다. 허연 엉덩이를 본순가 아차하고 후레쉬를 끄려고 올려 들자마자 건너편에 쪼그려 앉아 비누질을 하던 여자들의 허연 몸으로 후레쉬가 차례로 지나간다.‘옴마야’소리치며 몸을 움츠리며 난리 법석에 또다시 개울가에서 웃음 소리가 퍼진다.

그때 갑자기 다리위에서 망보던 고모가 뒤쪽방향을 향해 ‘누구야’ 하며 큰 소리를 치자 뒤쪽방향에서 누군가가 잡초를 가르고 도망가는 소리가 들린다. 고모는 우물쭈물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다 늦게 돌멩이라도 던져야겠다며 어딘가를 향해 돌멩이를 던진다. 목욕하던 여자들이 갑자기 ‘이 새끼 저 새끼 어떤 새끼야, 뉘 집 새끼야, 너 걸리면 뒤져, 가다가 넘어져 대가리라도 깨져라’하며 한마디씩 욕지거리를 하더니 갑자기 아까보다 더 크게 웃기 시작한다. 얼마나 오래 웃던지 어떤 여자는 너무 웃어서 배 아프다며 웃고 어떤 여자는 눈물이난다고 한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칠 흙 같은 어둠속에서 머리감고 목욕하고 하나둘씩 여자들이 나가고 고모가 개울 아래로 내려온다. 한여름이라고 해도 시골밤 개울물은 차가워 발가락조차 담구고 싶지 않아서 고모와 언니가 목욕하는 소리만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날이었다. 개울가를 가는 동안 수백 가지의 소리와 발가락 사이로만 전달되는 감각은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놀이이고 몇 배는 선명하게 들리던 벌레소리와 개구리소리, 흐르는 물소리, 질퍽질퍽, 미끌미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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