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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Nov 08. 2020

골든룰을 기억해

싫은 상황과 상처 주는 사람에게 대처하는 법

나이를 먹을수록 성격만 남는다더니 한 해 한 해 보내면서 새삼 절감하곤 한다.

어쩜 이다지도 다양한 성향과 취향과 성격이 존재하며 리액션은 극명하게 갈리는지!

하긴 나처럼 우유부단하고 마음이 약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특기였던 인간조차 머리가 굵어지고 내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되면서 그건 아니ㅡ라고 말하는 순간이 잦아졌으니까.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인 나의 열혈 친구 A는 내가 몇 달 전 겪은 먹튀사건을 되새기자 여전히 부들부들 떨면서 노했고 급기야 채무이행을 자처했는데 분노를 오래 끌고 가는 편이 아닌 나는 그래그래 꼭 받아서 너 용돈으로 쓰거라,는 말로 격려하며 이야기를 끝냈다.

한편, 뭘 해도 똑 부러지는 똑쟁이 친구 B는 부당한 일을 겪으면 곧바로 항의한다고 하길래 문득 부럽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나에게는 그런 소질(+용기와 배짱)이 없음을 스스로 잘 알기에(라고 쓰고 주제파악 이라고 읽음) 어설픈 흉내는 그만두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럼 나는 어떤 타입인가.

나는 표정관리가 어렵지만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 얼버무린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금세 화르륵 불이 붙지만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하지만 잊지는 않는다.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되 이건 좀 백업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은 감정들은 꼼꼼히 갈무리해 놓는다.

그리곤 완벽히 기억이 되어버린 그 감정을 때때로 들여다본다.

저 사람이 이런저런 짓을 했었고 그래서 내가 마음을 좀 다쳤었지ㅡ

그때의 일이 현재의 좋은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언정 종종 반추하는 것이다.

이유는?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으므로 저 웃는 얼굴이, 달콤하고 다정한 언사가 하루아침에 돌변하더라도 썩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가 느끼는 공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경계를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의외로 나의 평판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백업하는 기억들은 어떻게 선별하느냐고? 의외로 간단하다.

웃는 얼굴로 가만히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 거다. 물론 속으로.

이런 짓을 하고도 멀쩡할 줄 알아? 조만간 너한테도 나쁜 일이 생길 테니 각오해.

맞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면 나는 또 웃는다. 이번에도 속으로.

거봐 내가 뭐랬어.

너무나 완벽하게 표리 부동한 어른으로 성장한 나를 보며 좀 소시오패스 같은가? 싶기도 하지만 로또 1등 복권처럼 실물을 구경조차 한 적 없는 권선징악, 사필귀정보다는 인과응보, 자업자득을 기대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경험에서 기인한 나름의 정신승리 대처법이다.


하지만 인생은 골든룰이고 살을 잘못 날려서 실패했을 때 목적을 잃은 흉살은 출발점인 술사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인지 판단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우, 나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아직까지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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