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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an 28. 2021

'거의'의 꿈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구름은 손을 뻗으면 당장이라도 잡힐 듯 하지만

가수 이적은 서울대 재학 시절 가수가 되겠다며 여러 오디션과 가요제를 전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네가 가수가 된다고? 라며 냉소와 조소를 보냈고 그렇게 '거위의 꿈'이 태어났다.
그의 나이 스물셋에 써 내린 노래 가사였다.

나는 어디를 가도 그동안 내가 뭐하고 살았는지 앞으로 뭘 하고 살 건지 주절주절 떠벌이는 편인데(이력서에도 관련 경력을 꼭 쓴다) 어디를 가든 그걸 약점 잡아 돌려까거나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꼭꼭 있다.

(손담비의 니가? 짤을 떠올려보자)


그래도 난 꿋꿋이 떠벌떠벌거린다.
내가 읽는 책을 찍어 올리고, 공모전의 포스터를 업로드하고, 이번에야말로!!! 하는 소망을 덧붙인다.


그 오랜 시간을 매달렸는데 변변찮은 성과 하나 없으면서 부끄럽지 않냐 싶을 수도 있는데 솔직히 그게 내 정체성이고 살아온 히스토리인데 숨기면 어쩔 것이고 부끄러우면 뭐 어쩔 것이냐.


앞에서 비웃든 뒤에서 씹어대든 상관없긴 매한가지고 그보단 진심으로, 꾸준하게 나를 응원해주는 좋은 사람들의 존재가 훨씬 더 의미 있고 소중하고 고맙기 때문에.

사실 장그래는 원인터에 들어오기 전, 인턴 자리를 소개해준 후원자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프로바둑기사 입단을 노렸던 연구생임을 밝혔으나 호기심 어린 섣부른 호의는 이내 불신으로, 곧 비호감으로 바뀌게 되었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회사를 나와 도망치듯 입대해버리고 말았다.

여기 두 가지 성공 케이스가 있다.
이적은 포기하지 않고 끝내 꿈을 이뤄 성공했고 미생의 장그래는 꿈을 포기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장그래는 이미 그 세계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었고 주변의 오해(걔는 그 나이 먹도록 대학도 안 가고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안 따고 뭐했냐며, 게으르고 불성실한 낙하산 취급)를 풀 생각도 없다.


그냥 지금, 여기에서 잘하자, 버티자, 잘 버티는 걸 보여주자ㅡ하고 만다.


그렇게 장그래는 끝끝내 오차장에게 자신의 한국기원 연구생 경력을 밝히지 않는다.

(어쩌면 퇴사 후 오차장이 차린 회사에 입사한 뒤에는 털어놨을지도 모르겠다. 김대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사실 그만두는 것도 용기다.
근데 난 아직 그럴 마음도 용기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어쩌면 영원한, 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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