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셔레이드 걸 Jun 03. 2020

지하철을 추억하다

초록색 2호선과 나의 소녀시대

얼마 전 지하철에서 무심코 노선도를 올려다본 적이 있었다.

글씨를 읽기 힘들 정도로 국철에서 9호선과 각종 경전철 노선까지... 수많은 역들이 거미줄처럼 빼곡히 얽혀있는 도표였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보았던 지하철 안내 노선도는 꽤 단순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 시절, 성당 교리반 선생님 인솔 하에 서울 근교로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출발 전부터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유독 탈 것에 멀미가 심했던 나는 급기야 다리를 건너던 2호선 지하철에서 선생님께 울렁거림을 호소했다.

선생님은 지하철을 타고 멀미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지만 당장이라도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나머지 거짓말이 아니라고 반박할 기운조차 나질 않았다.

그렇게 좋지 않은 첫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지만 웬걸,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혼자서도 스스럼없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게 되었다.


1992년 봄, 종로에 대형 서점이 새로 오픈했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학교가 일찍 끝난 토요일 오후, 무작정 그곳을 찾아갔던 중학생 시절의 기억 한편에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늘 따라다닌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1호선 종각역에서 내린 나는 엄청난 인파에 휩싸인 채 좁다란 승강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 중에 행여나 넘어질까 씩씩하게 양팔을 휘저으며 발밑만 바라보고 걷다가 그만 앞에서 걷던 어느 아저씨의 손을 악수하듯 붙잡고 말았다.

나보다 더 흠칫 놀란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아보던 그 아저씨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동안은 부끄러움으로 지하철을 타지 못했을 만큼 창피스러운 일이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우스갯소리로 써먹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어쩌면 그 아저씨와 나는 전생에 공중그네 곡예사 콤비였을지도 모른다는 너스레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반년 남짓 남겨둔 무렵, 역으로 세면 다섯 정거장 가량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하철 정액권을 끊고 등하교를 한다는 사실에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두근거렸지만 하루 이틀 지나더니 금세 익숙해져 버려서 무덤덤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간혹 주말이면 수험생이라는 압박감으로 학교 근처의 독서실에서 밤샘을 한 뒤 일요일 아침 첫 차를 타고 귀가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사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책장을 넘긴 시간보다는 엎드려 새우잠을 잔 시간이 훨씬 더 길었으니 그럴 바엔 차라리 집에서 잠이라도 푹 자 두는 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에 보탬이 됐을 게 분명한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래도 그 바보 같은 행동에도 좋은 점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아침 첫 차를 타는 기분이 제법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비록 멍한 머리, 부은 눈에 팔다리는 찌뿌둥했고 입에서는 하품이 쉴 새 없이 새어 나왔지만 불규칙적으로 덜컹이는 한적한 지하철 의자 한가운데에 앉아 아침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거리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고3 스트레스 따위는 말끔히 사라지고 상쾌한 기분에 도취되어 그래, 조금만 더 참고 열심히 해보자! 라며 각오를 다지곤 했으니 전혀 소득 없는 밤샘은 아니었던 셈이다.


대학에 진학하자 예비 노선도에 그려져 있던 5~8호선이 모조리 개통을 했다.

서울 토박이임에도 어지간히 지리에 어두웠던 내가 손쉽게 발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공간 또한 점점 확대되어갔다.

그리고 모두 글로 담자니 차고 넘칠 것 같은 소중한 추억들을 덤으로 잔뜩 얻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언젠가의 일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아침부터 서두르다가 그만 교통카드를 깜박 잊는 바람에 한 번도 써본 일이 없는 1회용 교통카드 자동판매기를 향해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조작이 서툴러 기계 앞에서 쩔쩔매는 내 모습에 기가 찰 따름이었다.

간신히 목적지까지 가는 티켓을 발권하고 나서야 문득 지하철 시스템이 엄청나게 바뀌었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하철을 처음 타는 사람처럼 플랫폼 내부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단 개찰구의 모습이 달라졌다.

오래전, 무임승차하던 사람들이 금속 회전봉 개찰구 아래를 엉금엉금 기어 나가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개찰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 플랫폼에 서있으려니 스크린 도어가 새로이 보였다.

열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디지털식 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다음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움직이는 기차 그림으로 미리 알 수 있었다.

줄곧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것들로 역내는 잔뜩 채워져 있었다.


스윽 둘러본 지하철 안 풍경 역시 엄청난 혁명의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터였다.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읽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저마다 일제히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이 광경을 봤더라면 SF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어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디서든 누구와 통화를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TV 시청은 물론, 음악과 영화, 드라마, 예능 방송을 내가 원할 때에 언제고 감상할 수 있다.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든가, 우주관광, 시간여행 같은 것이 실제로 구현되더라도 사람들은 아무런 감흥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어쩐지 울적한 기분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에는 철저한 단속 탓인지 그다지 마주친 기억이 없는 지하철 행상이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카트에 단단히 얹은 박스에서 꺼내 든 물건은 장갑이었다.

일명 요술 장갑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몇 켤레씩 손에 들고 열과 성을 다한 브리핑을 마치자 어르신 한 두 분이 지폐를 꺼냈고 아저씨는 냉큼 달려가 공손하게 장갑을 건넸다.

그러나 더 이상 구매자가 나설 것 같지 않자 아저씨는 이내 덜덜거리는 카트를 끌고 다음 칸으로 휙 건너가 버렸다.

통로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최신식 열차였다.

지하철 행상과 자동문,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타고, 제각기 목적지에 도착하면 썰물처럼 내리겠지. 겉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지만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각기 다른 꿈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로 매일매일 꾸준히 채워지는 건 변함이 없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지하철에서 멀미를 하던 꼬마에서 운전면허증 갱신을 두 번이나 할 정도의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지하철에 타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지하철과 더불어 내가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기억들 위로 새로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일 거라는 생각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곤 문득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척 낯설게 느껴졌던 지하철의 모습이 어느새 눈에 익은 풍경으로 돌아온 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