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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un 04. 2020

콜드브루맛 하루

불면의 밤과 수면부족의 후폭풍

문득 잊고 사는 것들이 있다.

심각한 동물 털 알레르기, 퇴근길 공원 벤치에 앉아 알싸한 캔맥주 한 모금에 천하장사 소시지를 씹으며 바라보던 해질녘 풍경, 하굣길에 포장해온 500원어치 떡볶이에 만수르가 부럽지 않던 국민학교 6학년 가을날..

해가 지날수록 담는 것보다 새어나가는 쪽이 많고 많지만 어제 깜빡한 것은 내가 카페인에 민감하다는 거였다.


돌체 콜드브루가 핫하다는 말에 냅다 시켜서는

아.. 목 넘김이 부드럽다.. 고소한 이 향.. 최고..

하며 좋다고 쪽쪽 다 빨아먹고는 새벽 3시까지 말똥말똥한 눈으로 누워있었다.

출근 로그인을 하자마자 오전/오후 각기 다른 회의 준비로 자리에 앉을 새조차 없이 바빴고 그런 중에도 뭔가 자잘자잘한 업무-전화응대 같은-가 이어졌다.

어쨌든 바쁘다는 것의 장점은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것이고 평소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던 시곗바늘은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채 귀가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내 눈밑에도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한동안 일요일 저녁이면 고민에 빠졌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되뇌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로 어느새 질문이 바뀌어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내가 제대로는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물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로 다행인 건 내 엉망인 기억력과는 달리 비교적 감정은 쉽게 호출이 된다는 거다.

지난번 회사는 다닌 지 정확히 딱 이틀 만에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6년을 꽉 채우고 퇴사했다.

그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곳은 첫날 점심시간에 양치하면서 깊게 한숨을 쉬며 정말 간절히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6개월 후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것까지 보고 나왔다.


나는 인내심이 없고 지구력이 약하고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래서ㅡ

오래 버티고, 길게 바라보고, 금세 다시 시작할 줄도 안다.

그러니까 하루 정도의 수면부족은 눈감아주기로 했다.

너그럽게.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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