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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un 11. 2020

글짓기 놀이

스토리텔링으로 힐링하기

아이스하키 선수인 남자 친구에게 작가 일을 하는 여자 친구가 아이스링크에서 데이트를 하자고 졸랐더니 '넌 놀 때 글짓기하냐?'라고 쏘아붙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단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그녀가 굳이 스케이트장을 고른 이유는 뭘까? 아마 멋지게 스케이트를 타는 애인의 모습을 감상하고 싶기도 하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서 우쭐한 기분에 취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좀 귀여운 발상 같은데 그렇게까지 면박을 줄 필요가 있었을까?


둘째, 나는 글짓기를 하면서 논다.

각 잡고 쓰는 글,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검증받아야 하는 글이 아닌 혼잣말 같은 글을 손끝으로 자아내며 즐거워한다. 진심으로.

근데 그게 이상한 건가?


어릴 때 제출용 일기를 쓰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지금이라면 이건 일기가 아니라 일지 혹은 일간 업무보고가 아니냐며 반항했을 테지만 당시엔 그런 용어를 모르기도 했거니와 아마 알았다한들 어쩌지 못했을 것이 뻔하다. 난 착한 학생이었으니까.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숙제는 모르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뜻을 적고 해당 단어를 넣은 짧은 글짓기로 예문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너무 신이 나서 친구들이 10개, 20개 겨우 만들어올 때 나는 수십 개를 공책에 꽉꽉 채워갔던 기억이 난다. 하나의 단어에도 다양한 설정을 넣어 서너 가지 예문을 달았다.

선생님은 아예 내 공책을 들고 반 친구들에게 줄줄 읽어주셨고 나는 뿌듯하면서도 수줍어서 그만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1살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제시어, 즉 키워드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의 재미를 깨달았던 것 같다. 어렴풋하지만 그것은 확실한 '유희'였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흘러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하고 오늘은 직장에서 온라인 화상 회의 솔루션으로 경진대회 발표평가를 진행하는 날이다.

그렇지만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연필을 쥐고는 조금이라도 더 기발한 문장을 만들고 싶어서 눈을 반짝이던 그때의 꼬마처럼 여전히 스마트폰의 키패드를 두드리며 놀고 있다.

비록 출근길 버스 안에서 반쯤 감긴 눈꺼풀을 억지로 뜨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쪽잠보다 놀이가 즐거운 것을 보니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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