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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an 01. 2023

크림스튜, 브로콜리, 그리고 오사카에서 온 친구

주말 낮, 늦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갑자기 포토푀랑 크림스튜가 먹고 싶어져서 사진과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솔직히 한식에 비하면 초간단한 요리들인데 냄비를 꺼내고 재료를 씻고 썰고 끓이는 것조차 귀찮아서 그냥 반찬을 배달시켰다.

배달을 기다리던 중 문득 처음으로 맛본 크림스튜의 기억이 떠올랐다.


20년 전, 교환학생으로 왔던 오사카 출신의 일본인 친구가 전공 과제 작성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과후배와 나를 자취방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었다.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는 내가 외국인이 만들어준 가정식 요리를 먹다니! 감동과 두근거림도 잠시- 국대접에 담긴 우유에 익힌 채소와 고기의 비주얼에 몹시 당황하였지만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는 걱정 어린 말에 너무 맛있다고 화답하며 꾸역꾸역 먹은 기억이 난다.


사실 무슨 맛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고 국적이 다른 또래 여자애 셋이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그 친구의 최애프로그램인) '6시 내 고향'을 틀어놓고 서툰 한국어+엉터리 일본어(후배는 복수전공이라 잘했음)를 섞어가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던 장면이 더 또렷하게 남아있다.


그날은 제법 쌀쌀했던 초겨울의 금요일 저녁이었고 스물넷의 졸업반이던 나는 늘 알바와 만성피로와 수면부족, 궁핍함에 시달렸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크림스튜는 일드에서 구경만 했던, 난생처음 먹어본 해괴한 음식이었지만 우유탕에서 커다란 스푼으로 건져낸 브로콜리와 감자가 무척 따뜻해서 좋았던 것 같다.


근데 그 친구 이름이 뭐였더라...

정말 단 한 글자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사진을 보고 인물 이름 맞히기 퀴즈대회 같은 것에 나간다면 아마 예선 탈락이 되겠지.

그때 그 브로콜리의 식감은 아직도 이렇게나 생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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