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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Mar 06. 2023

이제 드디어 봄이다.

2023년 3월의 첫 주말을 보내며-

계좌 잔액 조회를 하다가 기절할 뻔했다.

12월에 입금된 성과급은 단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심지어 지난달 급여에는 소액이긴 해도 분명 연말정산 환급액이 붙어서 들어왔는데 적자는 아니었지만 작년 이맘때에 비해 남은 것이 미미했다.

거의 매일 주문했던 배달음식, 야근 후 이용했던 택시, 그리고 노견들의 병원비 영수증, 차량 정비 비용 따위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허투루 쓴 것은 없었지만 아껴 쓴 흔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 달에는 브레이크 오일과 미션 오일 교체라는 빅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기에 걱정이 앞선다.

지난 여름 호되게 앓았던 코로나는 정말 끝이 난 건지 슬슬 해외여행을 다녀오기 시작하는 동료, 지인들을 보며 나도 올해는 기필코 여권을 갱신하리라 야무진 꿈을 품었는데 이내 쭈그러들고 만다.

정말 그런 것에 돈을 써도 될까? 아무리 싸게, 짧게 다녀온다 쳐도 분명 기백만 원은 들 텐데 여느 때처럼 TV를 틀고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는 편이 내 형편에 맞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귀찮음과 두려움이 늘 뒤섞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달콤한 면죄부를 주곤 한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우울한 밤에는 더더욱 효과가 좋다.


눈을 뜨면 안도하게 되는 악몽이 있고 안타까워 눈물이 날 것 같은 꿈이 있다. (ref. 달콤한 인생)

오늘은 후자 당첨.

꿈에서도 바라마지않던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는데 너무 기뻐서 팔짝팔짝 뛰면서 가족에서 공고를 보여줬다.

1년짜리 인턴십+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라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병행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근데 알바 같은 건 할 수 있지 않나?

행복한 상상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가 잠에서 깼다.

!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쿨한 것이 최고 미덕인 21세기에서 감정과잉의 드라마틱한 전개는 오글오글하다고 외면당하기 일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영상과 음악과 대사와 연기를 애정한다.

특히 일본드라마의 매회 클라이맥스 엔딩에서 흘러나오는 주제가풍의 노래를 들으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치는데 최근에 좋은 음악을 알게 되었다.

요네즈 켄시의 '레몬'.

물론 가수 자체는 MZ인 것 같지만.


A4 용지를 꺼내다 박스에 손을 깊게 베었다.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 당황했다.

봉합을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 잠시 들었을 정도였지만 의외로 금세 상처가 아물었다.

다이소에서 사 온 알콜스왑을 잔뜩 사용한 보람이 있어 뿌듯했다.

그런데 오늘 오후, 강아지를 놀려주다가 바로 옆 손가락을 물렸다.

손톱 밑이 쭉 찢어져 피가 또 콸콸.

이번 상처는 꽤 오래갈 것 같다.

습윤밴드를 잘라 붙이고 테이핑을 했더니 약간 배구선수 같은 느낌.

살짝 부끄러운데 왠지 으쓱한 이런 기분.


또 한 주가 시작되는구나.

점심 약속이 한 건 있고, 외부 행사가 한 건,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생일도-

정신없이 바쁘고 힘에 부치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염불처럼 외다 보면 곧 금요일 저녁이 도래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유머와 다정함을 잃지 말자.

그것만이 이런 쳇바퀴 같은 무의미한 날들 속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가치이자 미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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